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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45. 평화를 통해 평화를
    • 등록일 2019-11-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0
  • 가톨릭신문
    발행일2019-11-17 [제3170호, 16면]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45. 평화를 통해 평화를

    평화,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
    「간추린 사회교리」 492항

     

    불의한 현실 반복돼 실망해도 폭력으로 평화 이룰 수 없어
    악은 또 다른 죽음을 초래해
    하느님께 희망두는 기도로 이뤄야

     

    베드로: 신부님, 저는 수 년째 환경운동을 하며 헌신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사람들이 자원을 낭비하고, 무관심하게 구는 것이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그럴 때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런 무책임한 이들이 심판을 받았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이 신부: 아, 그러셨군요!

     

    ■ 절실히 필요한 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심

     

    우리 사회에는 온갖 형태의 사회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도 그런 사회문제에 무관하지 않습니다. “왜 종교가 사회문제에 관여하느냐?” 라고 묻는 것은 “왜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거지?” 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사회문제를 대할 때 신중하게 대처해야 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관심이나 방관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내 자신이 불의하고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기다릴 시간이 있을까요? 나의 삶이 바쁘고, 남의 일이니까 우리는 무관심합니다. 하지만 깊은 관심과 연민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나의 회심도 이뤄야 하고 동시에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도 얻어야 합니다. 나만큼이나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 진정성 있는 영성(靈性)입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주최한 ‘유아들의 즐거운 불편 실천마당’ 행사에서

    학생들이 지렁이 키우기 체험 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절망’의 또 다른 이름, ‘폭력의 유혹’

     

    노동사목을 하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어떨 때는 비난과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잘 바뀌지 않는 현실도 있음을 또한 보았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원망하고 절망하고 급기야 무기력해집니다. 사제인 저도 이것을 체험합니다. 불의한 현실이 바뀌지 않아 실망합니다.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구하기 위해 칼을 휘둘렀던 베드로 사도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요한 18,10) 문제는 악을 이기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악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평화를 이루는 이의 삶은 평화 그 자체여야 합니다! 분노와 적대에서 나오는 행동은 선(善)보다 악(惡)이 많고, 평화가 아니라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 신앙인의 언어인 기도

     

    우리가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구하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이는 무엇보다 몸소 하느님의 평화를 드러내야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어려운 투쟁일 것입니다. 선함과 평화로운 방법을 버리고 복수와 힘으로 대응하는 것은 매우 강렬한 유혹이며, 심판과 단죄는 쉬우나 용서와 화해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평화를 통해 평화를 이뤄야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일은 하느님의 일이자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죽음과 폭력의 악순환이 사라지고 용서와 화해가 샘솟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평화입니다. 이제 그 평화를 위해 우리의 희망을 떠올립시다. 우리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을 신뢰하고, 기도를 통해 평화를 이루는 일을 지속할 때 그 사람 안에 평화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평화가 이뤄집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 6,12)

    이 이중의 화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예수님께서 참 행복에서 선포하신 말씀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간추린 사회교리」 492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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