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시는길
  • 후원안내
  • 문의하기
노동이슈

관찰

  • home
  • 노동이슈
  • 관찰

  • [경향신문]변기 위에 식기…무엇이 경비노동자의 이런 공간을 낳았나
    • 등록일 2020-05-21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79
  • 변기 위에 식기…무엇이 경비노동자의 이런 공간을 낳았나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노동자가 일했던 서울 강북구 아파트의 경비초소 내부 모습. 사건 이틀 뒤인 12일 사진기자가 찾아갔을 때 화장실 변기 위에 커피포트와 전자레인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권도현 기자 

     

    대부분 용역업체 소속…실질적 휴게공간 마련 어려워
    ‘초소서 해결’ 동의서 받기도…결국 ‘간접고용’의 산물

     

    좁은 화장실 벽에 경비복 여러 벌과 모자들이 걸려 있다. 변기 위 나무 선반에는 낡은 전자레인지와 전기 커피포트가 놓여 있다. 전자레인지 위엔 강냉이 과자와 종이컵, 커피믹스가 가지런히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가득한 이곳은 주민의 폭언·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10일 사망한 경비노동자 최희석씨가 일했던 서울 강북구 ㄱ아파트 경비초소 내부다.

     

    20일 이곳을 찾았다. 1주일 전 주민들이 경비초소 창문에 붙인 추모 쪽지는 떼어졌지만, 경비실 내부는 그대로였다. 경비실 안 문을 열면 보이는 화장실은 여전히 경비노동자가 웃옷을 벗어두는 옷장이자, 한숨 돌리며 커피믹스를 타 마시는 탕비실이었다. 다른 동 경비초소도 비슷했다. 화장실과 업무공간을 커튼으로만 구분했다. 변기 위 전기 커피포트도 마찬가지였다.

     

    열악한 휴게환경은 이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경비노동자들이 좁은 경비초소 안에서 업무공간과 휴게실이 분리되지 않은 채 24시간 일한다.

     

    이날 찾아간 서울의 또 다른 아파트 경비초소도 업무공간과 화장실이 커튼으로만 나뉘어 있었다. 1평(3.3㎡)도 채 안 되는 화장실 벽엔 어김없이 경비복이 걸려 있었다. 변기 위 선반엔 전자레인지와 낡은 1구짜리 휴대용 인덕션, 양은냄비, 라면봉지가 있었다. ‘위험해서 어떻게 조리를 하느냐’는 질문에 한 경비노동자는 “조심해서 해야죠”라고 웃으며 답할 뿐이었다.

     

     

     

     

    변기 위에 식기…무엇이 경비노동자의 이런 공간을 낳았나.

     

    경비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일하기 위해 휴게공간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 강서·노원·서대문·성북구 경비노동자 4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58명(94.6%)이 협소한 경비초소에서 24시간 격일제로 일한다고 했다. 응답자의 41.1%는 ‘경비초소를 휴게공간으로 겸해 쓰고 있다’고 답했다.

     

    별도 휴게공간이 있어도 지하(61%)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하 휴게실은 환기 문제 등 때문에 휴게공간으론 적절하지 않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 경비노동자는 “야간 휴게시간에 스티로폼과 냉장고 박스 또는 TV 거치대를 이용해 취침한다”며 “별도 휴게공간이 있지만 잠잘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노사관계 지원사업 공동사업단’(공동사업단)이 펴낸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도 비슷한 통계가 나온다. 서울 4개 구, 수원, 부천, 대전 등 전국 15개 지역 경비노동자 33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참여자의 40.2%가 경비초소를 휴게실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실질적인 휴게공간이 없는 건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구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대부분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다. 아파트 주민들의 대표기구인 입주자대표회의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경비노동자들을 간접고용한다. 직접고용은 비율이 낮다. 공동사업단은 보고서에서 “사용사업주인 입주자대표회의의 허가가 없으면 실질적인 휴게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비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 시선도 열악한 근무환경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김선기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통화에서 “다른 사업장에는 휴게실·수면실이 성별로 분리돼 마련돼 있다. 경비노동자에게만 반인권적인 곳에서 일하고 쉬라는 건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부터 경비초소를 휴게시설로 사용하는 데 동의서를 받는 경우도 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구성된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의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경비초소 중엔 다리조차 펼 수 없는 좁은 곳이 많다”며 “경비초소를 휴게시설과 겸용할 때는 업무공간 평수의 2배 등 ‘최소 평수’를 세밀하게 규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1월부터 법이 개정돼 아파트 경비원·미화원,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위한 휴게공간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50가구 이상 공동주택(아파트, 연립 등)을 건설할 때 관리 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시설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개정 이전에 지어진 공동주택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사업주가 설치해야 할 휴게시설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산안법 제64조는 ‘사업주가 위생시설 설치에 필요한 장소를 제공하거나, 설치한 위생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업주에게 경비·미화 등 노동자를 위한 휴게공간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무는 부여했지만, 해당 공간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 상세히 명시하진 않았다. 2018년 7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에 공간 규모, 온·습도 등 내부 환경 등 구체적인 요건이 나오지만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안 센터장은 “‘1인당 최소 몇 평 이상의 휴게공간을 보장한다’ ‘소등할 수 있어야 한다’ ‘여름·겨울에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등을 산안법·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사업단도 보고서에서 ‘1인당 면적은 1㎡, 최소 전체면적은 의자·탁자 등을 포함해 6㎡를 확보’ ‘냉난방 및 환기시설 구비’ ‘휴게공간 내 소음은 50㏈ 이하 유지’ 등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경비노동자 근로계약서 뜯어 보니…‘3개월’ 단기계약 일쑤, “민원 야기 땐 계약 해지” 부당 조항도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근로계약서에서도 드러난다. 2015년 서울 성북구 동아에코빌 아파트에서 계약서에 ‘갑·을’ 대신 ‘동·행(同·幸)’을 사용해 경비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추진한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문제적인 계약 조항을 명시한 사례도 많다. 경향신문은 각기 다른 수준의 근로계약서 3건을 분석했다.

     

    ㄱ씨의 근로계약서는 경비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ㄱ씨는 경비 용역업체와 2013년 8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3개월 단기계약을 맺었다. 경비노동자들에게 3개월 단기계약은 흔한 일이다.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보고서)에도 경비노동자 3150명 중 685명(21.7%)이 3개월 단기계약을 맺었다고 답했다.

     

    이 계약서에는 “계약 만료일까지 재계약 합의가 없으면 본 계약은 자동 종료된다”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다. “민원 야기(인원교체 요청 포함) 시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이런 조항들 때문에 경비노동자들이 입주민들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당하거나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아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경비노동자가 경비 업무에만 종사할 수 없도록 한 정황도 보였다. 해당 계약서는 근무내용을 ‘경비 업무 직책’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별도 조항으로 “업무사정 및 인원 수급 상황, 계절적인 변화 등에 따라 근로장소와 근무내용 등을 변경할 수 있다”고 했다. ㄱ씨는 이 조항을 핑계로 주차 단속, 분리수거, 택배 관리 등 경비 외 업무를 하라고 요구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야간 휴게시간도 연속적으로 보장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계약서는 야간 휴게시간을 “오후 22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사이의’ 5시간”으로 정했다.

     

    ㄴ씨는 아파트대표회의와 1년간 직접 고용을 맺었다. “별도의 재계약 의사표시가 없더라도 계약 기간만큼 ‘자동 연장’된다”고도 쓰여 있다. ㄴ씨는 해당 아파트에 최소 2년 근무하게 된 셈으로 ㄱ씨보다 상대적으로 고용상태가 안정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년 근로계약을 맺은 경비노동자는 참여자 중 185명(5.9%)에 불과하다. 다만 ㄴ씨 계약서에도 “경비직을 주 업무로 하지만 주차장 관리 및 기타 관리소장이 지시하는 사항에 대해 성실히 협조한다”고 적혀 있어 주차 관리 등 경비 외 업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ㄷ씨는 ‘동행(同幸)’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계약서에는 업무가 ‘경비’로 명시돼 있다. 단서 조항도 없다. 야간 휴게시간은 4시간으로 연속 보장하게 했다. 계약 기간도 1년으로 명시했다. 다만 이 계약서에도 “근무 부적격자로 인정돼 입주자대표회의 등 사용자의 교체 요구가 있을 때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어 민원에 취약한 문제는 남아있다. 김선기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교선국장은 초단기 계약이 경비노동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조항이라고 했다. 김 국장은 통화에서 “현행법상 근무연수 1년 미만 노동자는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 경비노동자 용역계약에서 3개월 등 초단기 계약이 늘어나는 이유”라며 “1년 미만 노동자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탁지영, 조문희 기자

     

    * 출처 : 경향신문 2020. 5. 21
    * 해당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210600015&code=940100

  • 첨부파일
    002.jpg
    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