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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인]코로나19가 드러낸 ‘약한 고리’
    • 등록일 2020-03-25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08
  • 코로나19가 드러낸 ‘약한 고리’

     

    재난은 약자들에게 가혹하다. 택배 노동자는 물량에 치여도 일을 멈출 수 없고, 플랫폼 노동자는 일거리를 잡을 수 없다. 간병인, 콜센터 직원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이 무너진다.

     

    쿠팡맨이 죽었다. 46세 김 아무개씨. 3월12일 새벽 2시께, 경기도 안산의 한 빌라 4층에서 5층 사이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며 10박스를 몇 번에 걸쳐 배송하던 중이었다. 오전 1시께 김씨의 배송이 멈추자 1시30분쯤부터 동료 쿠팡맨이 그를 찾아 나섰다. 30분 뒤에 발견된 김씨는 심폐소생술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경찰은 사인이 허혈성 심장질환이라고 했다.

     

    아이가 둘이다. 다른 직장에 다니다 퇴직한 뒤 공백 기간 쿠팡에서 일하려 했다. 3개월 수습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2월14~15일 본사 교육을 받고, 2월16~17일 동행 배송에 나갔다. 2월18일부터 단독 배송에 투입됐다. 밤 10시에 출근해 오전 7시까지 새벽 배송을 맡았다. 김씨가 속한 야간조는 1차 배송을 새벽 3시까지 마친 뒤 2차 배송을 오전 7시까지 끝내야 했다.

     

    김씨가 배송을 시작한 2월18일은 코로나19가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한 때다. 김씨가 일했던 안산 1캠프(물류센터에서 가져온 상품을 분배하는 기지)의 한 쿠팡맨은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는 체감상 물량이 30%는 늘어난 것 같다. 가구수가 같아도 한 집에서 여러 개, 고중량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우유나 김치, 쌀, 요플레가 무겁다”라고 말했다. 물건 1개당 무게가 21㎏ 이상이면 쿠팡맨이 직접 배송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집에서 여러 개를 시킬 때의 무게 제한이나 하루 배송 물량, 배송 가구수 등엔 제한이 없다.

     

    숨진 김씨는 야간조 비정규직이었다. 쿠팡맨 약 7000명 중 입사 2년 미만 계약직이 80% 정도다. 계약직도 다시 ‘노멀’과 ‘라이트’로 나뉘는데, 라이트의 배송 물량은 노멀의 75% 정도다. 그만큼 급여도 적게 받는다. ‘라이트’로 입사한 수습 쿠팡맨 김씨는 9단계까지 이어지는 쿠팡의 임금테이블 ‘잡(job) 레벨’에서 맨 아래 단계다.

     

    쿠팡이 늘어난 물량에 대처하는 방법이 쿠팡맨 채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이 자기 차량으로 로켓배송을 수행하는 ‘쿠팡플렉스’가 있기 때문이다. 건당 수수료로 돈을 번다.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다. 쿠팡은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쿠팡플렉스를 3배로 늘렸다고 설명한다.

     

    쿠팡맨 김씨가 숨진 지 5일이 지난 3월17일 밤 11시. 그가 일하던 안산 1캠프 입구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자가용·밴·봉고차 행렬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일찍 도착한 자가용들이 밤 10시30분부터 차례로 물건을 실으러 캠프에 들어갔다. 캠프 앞에서 대기 중이던 박성우씨(41·가명)는 쿠팡플렉스 심야배송을 시작한 지 한 달 되었다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 분장 일을 하는데, 코로나19로 작품이 계속 연기되고 다른 일도 안 잡히고 있어서 시작했다. 하루에 50~60개 배송하는데 시작한 시점에 비해 단가가 많이 떨어졌다. 1000원 넘던 개당 배송단가가 지금은 900원, 800원이다. 비닐로만 포장된 물건은 개당 단가가 750원이다.”

     

    ⓒ시사IN 조남진
    3월18일 최세욱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 사무장(가운데)이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같은 캠프에서 쿠팡맨 김씨가 숨진 것을 그는 뉴스를 통해 접했다. 박씨는 “쿠팡맨하고는 별로 부딪칠 일이 없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시간의 압박이 심하다. 오전 7시까지 못 끝내면 전화가 온다. 제시간에 못하는 사람에겐 일감을 안 준다. ‘블랙리스트’도 있다. 중간에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도 정해진 시간 내로 일을 끝내야 한다. 나도 얼마 전에 배송하다 어지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

     

    레슬링·주짓수·합기도를 가르치는 체육관 관장 주동철씨(44·가명)는 쿠팡플렉스를 시작한 지 3주째다. 그 역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이 일을 하게 되었다. “2주 전만 해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나오진 않았다고 하더라. 하루 100개 넘게 배송하는 ‘선입차’와 하루 100개 미만 배송하는 ‘후입차’ 모두 (코로나19) 이전에는 40~50대였다가 요즘 90대로 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허탕 치는 날도 생긴다. 엊그저께도 여기서 기다리다가 ‘물량이 없어서 1인당 10개도 안 돌아갈 것 같은데 어떻게 하겠냐’고 하기에 빠지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가 운영하는 체육관은 초토화되었다. “원래는 1월에 예비소집을 하며 이벤트를 열면 2월부터 입관이 시작된다. 그렇게 1년을 산다. 하루 20~30명이 입관 문의를 해오다가 2월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문의 자체가 없어졌다”라고 주씨는 말했다. “시청에서 연락이 와서 ‘만약에 휴관 안 하다가 확진자가 나오면 전국적으로 체육관 이름과 사업자 번호가 뿌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반강제로 3월1일 휴관했다가 보름 만인 어제 다시 열었다. 60명이던 관원이 6명 남았다.”

     

    주씨는 월 88만원인 임차료를 내지 못했다. 어제 건물주에게 임차료를 내라는 문자를 받았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주씨는 사범 3명의 월급을 주기 위해 적금을 깼고, 차와 금붙이를 팔았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도 받았다. “후배 관장이 정부에서 한다는 소상공인 대출을 신청했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두 달 후에야 받을 수 있다더라. 오늘 당장 10만원이 없어 죽겠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하루 3~4시간 들여 60개 배송하면 4만2000원을 가져가는 ‘플랫폼 노동자’ 주씨는 배송 중 사망한 수습 계약직 쿠팡맨 김씨를 보는 심경이 복잡하다.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우리랑 물량을 나눠서 했으면 어땠을까. 쿠팡맨과 우리는 입장이 다르다. 우리는 물량이 없어서 문제다.”

     

    간병인은 ‘투명인간’ 취급

     

    비정규직 김씨는 물량에 치여도 일을 멈출 수 없었다. 플랫폼 노동자 주씨는 일거리를 원해도 잡을 수가 없다. 코로나19 시대에 사회적 거리두기 흐름을 타고 ‘특수’를 누린다는 배송업체 현장에는, 재난의 충격을 온몸으로 맞는 취약계층의 삶이 어지럽게 뒤틀린다.

     

    경북 청도군 청도대남병원은 정신과 환자 103명 중 101명이 집단 감염된 장소다.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 임 아무개씨는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엿새간 간병하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그의 나이 77세. 당뇨를 앓고 있었다. 경북 경산에 사는 임씨는 간병인을 구하기 힘든 청도로 아픈 몸을 끌고 일하러 왔다. 그의 시급은 4200원이었다. 최저임금법 위반이 아닐까? 간병인은 일부를 제외하면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특수고용 노동자’다. 개인사업자 신분이기에 최저임금 등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구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김정희씨(가명·64)에 따르면, 간병인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투명인간’이고 ‘이방인’이다. “환자에겐 이런저런 검사와 조치를 취해주는데, 우리한테는 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도 없다. 병원에 확진자가 있어도 어떤 환자인지 간호사들은 알지만 우리는 알기 어렵다. 환자의 식사 수발을 들고 기저귀를 가는데 산재보험도 없다. 불안해서 일을 못해도 실업급여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식들이 용돈을 주며 일하지 말라고 하는 정도다. 마스크도 항의해서 겨우 1주일에 2개 지급받는다.” 김씨는 보험설계사로 10년 일할 때도 특수고용(특고) 노동자 신분이었다. 이후 간병인으로 일해온 14년 동안에도 ‘특고’ 신분이 유지되었다. 남편을 일찍 여읜 가장인 김씨는 “엄연히 노동을 하는데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 후배들이라도 언젠가는 우리처럼 억울하지 않고 보람 있게 일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의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와 간병인은 여성이 대부분인 직종이다. 서울에서 첫 집단감염이 일어난 구로 콜센터도 그랬다. “구로 콜센터 직원이 아프다고 했는데도 오후 6시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콜센터 다니는 사람들은 왜 그랬는지 다 안다. 관리자들이 안 보내준다. 당장 한 명이 빠지면 응답률이 떨어지는데, 관리자들은 거기에 목숨을 건다.” 경기도의 한 전자회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50대 초반 5년 차 상담원 이진희씨(가명)가 말했다. 구로 콜센터 직원들은 에이스손해보험의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폭 120㎝인 책상 앞에서 모니터 하나를 두고 파티션을 사이에 둔 채 온종일 말하며 일하는 이씨도 하청업체 소속이다.

     

    “원청에선 하청 직원에 관심이 없다. 하청 관리자들은 실적으로 평가받으니까 응답률 떨어진다고 하루에 두 명 이상 연차를 못 쓰게 한다. 몸이 아파도 그냥 천천히 전화를 받으라고 할 뿐이다. 우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내가 아프면 네가 쓰러져서 같이 119 타고 가자. 그게 아니면 안 보내주니까’ 그런다. 언젠가 한 명이 화장실 갔는데 내가 또 가려고 하니 관리자가 막았다. 그래서 ‘제가 여기서 싸게 되면 아무도 근무를 못 해요’ 하고 다녀온 적도 있다.”

     

    신천지 예배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칸막이만 없지 우리랑 똑같네’라고 생각했던 콜센터 상담원들은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다. 콜센터 상담원 확진자 A씨는 상담일을 하는 동안 여의도 증권사들에 녹즙을 배달하기도 했다. A씨의 ‘투잡’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씨는 말했다. “콜센터 관리자들은 ‘카드빚이 많은 생계형 직원들을 선호한다’ 따위 얘길 공공연히 한다. 대부분 노조가 없다.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콜센터만은 정부에서 노조 만들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장갑질119에서 코로나19 관련 제보를 받고 있는 윤지영 변호사는 “제보의 강도가 점점 강해졌다”라고 말했다. “초반에는 ‘쉬어야 되는데 그냥 쉬긴 뭐하니까 연차를 쓰라고 하는데 이게 맞느냐’는 제보가 많았다. 그러다 무급으로 휴직하라는 제보가 이어졌고, 나중에는 회사가 힘들다면서 권고사직을 시키는 사례가 많았다.”

     

    30대 초반의 한 대한항공 파견업체 노동자는 3월1일부터 2주째 무급휴직 상태라고 했다. 출국장 안에서 승객을 인도하고, 티켓을 확인하고, 수화물을 체크하는 국제선 출입국 업무를 해왔다. “안 그래도 일본산 불매운동 때문에 사람을 줄인단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처음엔 몇 명만 무급휴직을 받다가 점점 대상자가 많아졌다. 기간도 5일, 6일, 2주, 그러다 한 달로 늘어났다. 이제는 회사도 버틸 수 없으니 권고사직을 권유하고 있다. 입사 10~11개월 된 신입 2명은 조금 있으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1년 근무가 채워지니, ‘2주 후에 권고사직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항공사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파견업체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지금은 하루하루 무급휴직에 들어가고 있는데 이제는 4월 한 달 통으로 들어갈 사람을 자원받고 있다. 그 뒤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직원들 사이에선 쿠팡맨을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시사IN 조남진
    3월8일 인천공항 계류장에 항공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구직자에게도 코로나19는 닥쳐왔다. 김미정씨(가명·26)는 카페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카페는 외국인 손님이 주로 오는 곳이었는데 외국인이 급감했다. ‘다른 알바가 그만두는 김에 너도 이번 주까지만 나오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길 들었다. “말은 부탁이지만 사실은 해고잖나. 그냥 알았다고 했다. 다른 카페에서는 주휴수당이 부담되니 시간을 좀 줄여서 주 15시간 미만으로 해달라고 했다. 생활비를 계속 벌어야 하는 취업준비생이어서 물류센터 알바를 구했다. 취업 준비할 동안 계획을 잡은 생활비가 안 채워지니까 스트레스 받는다. 상반기 채용도 불안정하다. 원래 3월 둘째 주에 공고가 나면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는데 이번에는 3월 말까지 자기소개서를 받더라.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이러는 것 같다. 삼성은 4월로 밀렸다.”

     

    “국가가 평등하지 않구나”

     

    무료 급식소는 문을 닫거나, 마스크를 쓴 노숙인에게만 개방한다. 간편식만 배송되어 2주째 빵만 먹은 노숙인도 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던 활동지원사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장애인 자가격리자가 13명 정도 발생했다. 인력 지원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데 5년 전 메르스 때도 지원체계를 요구했지만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13명 중 기어서라도 움직일 수 있는 분은 혼자 계셨고, 나머지 아주 중증의 8명 정도에게만 지역의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직접 가서 지원했다. 그것도 숫자가 모자라서 한 사람이 식사 시간에 이 집 돌고 저 집 돌았다. 자가격리 지원품도 생쌀, 생양파인데 장애인들이 요리를 해먹을 수 없었다. 우리가 긴급하게 도시락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똑같이 때려도 약한 곳부터 부러진다. 이것은 재난의 그늘도 재난의 뒷모습도 아니다. 재난 본연의 속성이다. 1995년 시카고 폭염으로 700명 넘게 사망했을 때,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집단은 노인과 빈곤층, 1인 가구였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희생자는 청도대남병원의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나왔다. 한국 사회는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상병수당 제도조차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았다. 가장 취약한 곳부터 툭툭 끊겨 나간다. 정부의 특수고용 노동자 생활안정자금 융자 지원은 산재보험의 대상이 되는 9개 직종 특수고용 노동자에 그쳤다. 실업급여 없이 무급휴직 중인 한 장애인 복지관의 특수고용 노동자 놀이치료 강사는 “국가가 평등하지 않구나, 느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보여준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전혜원·나경희·김영화 기자

     


    * 출처 : 시사인 2020. 3. 23
    * 해당원문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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