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관안내
  • 오시는길
  • 후원안내
  • 문의하기
노동이슈

관찰

  • home
  • 노동이슈
  • 관찰

  • [한겨례]일자리와 정치의 책임
    • 등록일 2019-07-10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6
  • [세상읽기] 일자리와 정치의 책임
     
    샬럿 브론테는 <제인 에어>로 성공했으나, 또다른 소설 <셜리>를 쓰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엇갈리다 조우하여 매듭짓는 사랑에 관한 소설인데, 펜의 속도가 오르기도 전에 그녀의 동생들이 연이어 세상을 버렸다. 슬픔을 추스르고 소설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젊은 사랑의 들뜬 배경으로 19세기 초반의 아찔한 현실을 끌어들였다. 첨단기계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섬유 노동자들이 분노하여 기계를 공격했던 러다이트 운동.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기계 도입에 앞장선 섬유공장 사장이었고, 날카로운 분노의 과녁이었고, 셜리보다는 그이의 재산에 마음을 잃은 인물이었다.

     

    그를 마주한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발명이나 혁신은 좋다. 그것을 막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굶게 내버려 두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를 하는 자들이 방도를 찾아야 한다. 맨날 어렵다고 신소리 내는 자들이지만, 그런 어려운 일을 하라고 뽑아준 것이다. 공장주는 말한다. 그러니까 의원들을 찾아가 맘껏 항의하라. 발끈한 노동자는 당신도 기계 도입 속도를 늦추라고 요구한다. 공장주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설령 내가 그렇게 하더라도 다른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기계를 사들일 테고, 나는 결국 파산할 뿐이다. 그래서 그는 더욱 당당하게 내일 당장 기계 한대를 더 도입하겠노라고 선언한다. 평행선에 선 양쪽은 결국 서로 총을 겨누고 쫓고 쫓긴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분노에는 궤적이 없다. “비참함은 증오를 낳는다. 고통받는 자는 기계가 자신들로부터 빵을 뺏어갔다고 믿고 증오한다. 기계가 설치된 건물을 증오한다. 그 건물을 소유한 공장 사장도 증오한다.” 브론테는 이런 날선 고발을 남기고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마침내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침묵한다. 셜리는 새로운 사랑을 얻고, 증오는 끝내 묻힌다.

     

    <셜리>는 그다지 성공한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비참함은 증오를 낳는다”는 구절은 영국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은 윌리엄 베버리지의 대저작 <자유사회에서의 완전고용>의 표지에 인용된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단지 빵만의 문제는 아니라 인간의 존엄에 관한 것인 만큼, 쉽게 증오와 불안으로 발화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분노를 막는 일이 <셜리>의 섬유공장주와 같은 개별 고용주의 선의에만 의지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베버리지는 <셜리>의 노동자들이 호소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주목한다. 그는 완전고용을 국가의 책무라고 선언했고, 그 구체적인 잣대로 3%의 실업률까지 제시했다.

     

    덕분에 20세기 후반에는 일자리에 관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완전고용에 도달하면 노동자의 협상력이 커져서 임금이 상승하고 노동비용도 올라 물가마저 덩달아 치솟아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거시경제적 걱정이 커지면서 물가 관리가 슬그머니 우선순위에 오르고 일자리는 후순위에 밀리게 되었다. 일자리의 ‘봄’이 온다 싶으면, 바로 임금 인상과 물가를 걱정하여 긴축 태세에 돌입한다. 그러니 일자리를 위한 팽창정책은 한발 늦고, 물가 ‘과열’을 막으려는 긴축정책은 한발 빨라서 일자리 사정을 어렵게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실업률이 낮아지고 기업들이 사람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데도 임금은 계속 정체되는 현상이 잦다. 저명한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는 ‘포기의 경제학’ 때문이라고 한다. 일자리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저 기회가 있는 만큼 일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기회가 생기면 이런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임금이 늘지 않는다. 임금 협상을 해줄 노조도 없다. 허깨비 같은 임금과 물가 걱정 때문에 긴축정책은 이제 두발 앞서고, 적극적인 팽창정책은 두발 느리다.

     

    그리고 일자리가 넘치면 노동자들이 게을러지고 생산성이 떨어져서 ‘사회적 관리’가 힘들다는, 자본주의 역사만큼 유구한 ‘걱정’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평행선을 달리는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러다이트 운동이 기대했던 정치인들은 여전히 ‘셜리’ 같다. 잠깐 놀라고, 곧 잊는다. 경제의 먹구름이 몰려온다는데 꼼짝하지도 않는다.

     

    베버리지의 꿈은 원대했다. 사람이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사람을 찾아가는 세상.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에 이끌려 일하는 세상.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적어도 상대 멱살만 잡고 으르렁대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이상헌(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 출처 : 한겨례 2019. 7. 9
    * 해당원문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1124.html

  •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