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할 자유와 가족 행복권의 무게
“임신 계획은 없는 거죠?”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새로 면접을 보러 갔던 회사에서 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때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서른 초반의 기혼여성이란 점이 취업의 큰 장애일 거란 생각은 못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내 능력을 믿었는지, 아니면 취업을 위해 별생각 없이 던졌던 ‘아이 생각은 없습니다.’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난 그 회사에 취업을 했고 5년을 근무했다. 수당도 없는 야근과 주말근무에 솔선수범했고, 원거리 출장도 시원스레 다녀오며 나는 어느새 일 잘하는 직원이 되어 승진도 했고, 상사들이 툭하면 먼저 찾아대는 중간관리자가 되어있었다. 선배들도 그랬고, 그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정말 인생계획에 없던 가족계획이 새로이 쓰였다. 커리어에 목숨 걸며 회사를 다니던 시절이라 난 적잖이 당황했었지만, 금세 하느님이 주신 그 생명에 푹 매료되었다. 임신은 했지만, 업무에는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변함없이 근무에 임했다. 다만 해외출장이 잦은 업무 탓에 회사에서는 썩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 그제야 선배들 중에 임신, 출산한 여자 선배들이 없는지가 눈에 보였다. 그러나 내가 신경 쓰면 더 눈치 보일 것을 생각해, 아무렇지 않게 회사 생활에 임했고, 출산에 임박해 출산휴가를 쓴 후에는 육아휴직 없이 바로 복귀할 것을 계획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달이 가까워 오고, 드디어 출산 휴가를 쓸 날짜가 코앞에 다가오자 인사팀에서 조용히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저희 회사가 원래 육아휴직이 없는 거 아시죠?”
원래 육아휴직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봤다.
“그전에 계시던 분들도 모두 출산 휴가만 쓰시고 바로 퇴사하시는 걸로 합의하셨어요.”
난 출산휴가 후에 다시 복직을 얘기했지만, 회사는 육아휴직을 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노동에 있어 시간적 제약이 많은 ‘아이 엄마’는 원하지 않는다는 의중의 뿌리를 깊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자의였을지 타의였을지 모르지만 그 일에 합의한 채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뻔뻔하게 자리를 지킬 배짱도 없거니와, 아이를 키우며 회사와 싸우듯 출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대로 물러서긴 더 싫었다. 회사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좋은 직원’이었던 나는 끝끝내 버려질 소모품이 되어 일해 온 걸 안 순간이었다.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안정적인 직장이라 생각하며 다녔던 게 얼마나 헛된 착각이었는지 정신이 번쩍 드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출산과 육아 앞에서 모성보호 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새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어 버렸다.
일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가족의 행복권과 맞바꿔야 하는 무게였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문자로 만나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답이었는데, 현실 앞에서는 참으로 초라한 선택이 된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그 이후 작가로 등단을 하고, 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글로 써 옮기려 하지만 아직 그 걸음이 작다. 나의 작은 노력이 아직은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언젠가는 생명 탄생의 기쁨과 노동의 자유를 저울질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하루빨리 희망의 문이 열리길 축복의 마음으로 기도해본다.
창작집단 '이랑' 대표 이지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