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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 하느님과 이웃을 기억하게 하는 것

노동사목위원회

“미안함, 하느님과 이웃을 기억하게 하는 것”



하느님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그의 믿음에 감동하신 모습(창세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면서 그들의 완고한 마음에 역정을 내시는 모습(탈출기), 폭풍 속에서 나타나 욥에게 엄하게 훈계하시는 모습(욥기)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노동을 하시는 모습도 있으니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농부의 모습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농부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연세 많은 할아버지가 뙤약볕 아래서 목에 수건을 두르고 밀짚모자를 쓰고 허리를 굽혀 모내기를 하는 모습. 혹은 스마트팜(smart farm)에서 첨단 기술로 농장을 운영하는 귀농 청년의 모습? 농사일이 고돼서 그런지 농부의 이미지는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럼 ‘하느님께서도 고되게 노동을 하실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람들이 청하는 것이 많으니 하느님께서도 바쁘실 수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사무실을 선호할 겁니다. 그리고 문득 어려운 곳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럼 어디가 어려운 곳입니까?

건설 현장, 도로나 시설 보수, 우편과 택배, 환경미화처럼 옥외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떠오르네요. 또한 에어컨이 나온다 해도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학교의 급식 조리실이나 식당, 작업장 같은 곳들. 콜센터는 비좁고 공기도 안 좋다는 데 거기도 걱정이네요. 요양병원이나 아파트 경비실은 어떨까요? 그런데 춥고 더운 환경을 떠나서 일터에서 갑질에 시달려 괴로워하는 분들도 있고, 무엇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분들도 많답니다. 비정규직, 단기 알바, 하청업체 종사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분들은 급여도 적고 일도 힘들다지요? 아침 인력시장에 새벽같이 나와도 하루벌이도 못하는 경우도 많고,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분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많은 분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노동과 수고가 아니면 사회의 발전과 번영, 유지와 지속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누려온 편안함도 함께 무너질 것입니다.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벽돌이 초고층 아파트를 이루고, 누군가 조리한 음식이 테이블에 오르며, 새벽 총알배송의 이면에 사람이 있음이 실감이 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무심코 이용하는 서비스, 상품에는 인격과 땀, 노력과 혼이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노동을 비용과 상품성만으로 보지 않고 인격적으로 이해하라고 권고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76).

문득 제가 부끄럽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관심했으며, 힘들게 일하지만 기본적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나의 편안함이 비용 지불의 대가를 치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희생을 요함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사제로서 많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 미안함이 저로 하여금 하느님과 이웃을 생각하게 합니다.



“노동은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특징 때문에
생산성과 관련된 다른 모든 요소보다 우위에 있다.”
<간추린 사회교리 276항>



이주형 요한 신부.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