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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노동사목위원회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노무사님, 상담 좀 하려고 전화드렸는데요.”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았다며 약간은 흥분한 목소리로 상담을 요청했다.
“네, 궁금하신 것 말씀하세요.”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는데 실업급여(정확히 말하자면 구직급여다)를 받을 수 있나 해서요?”
“임금체불이 있거나, 사업장이 이전하여 통근이 곤란하거나, 가족 중에 편찮으신 분이 있어서 간호해야 하거나 하는 사유가 있나요?”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하고 그 사유는 고용보험법 시행규칙 [별표 2]에 자세히 나와 있다.
“아니요. 회사에서 하도 못살게 굴어서 더는 못 버티겠어요. 그래서 그만두려고요.”
“아, 안타깝지만 그 사유로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에는 구직급여를 받기 힘들어 보이네요.”


전화통화를 하면서 어떻게 회사에서 괴롭혔는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이 상담을 했을 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근로기준법에 생기기 전이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조항은 2개 조항이 신설되었다.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하면 안 된다는 조항(제76조의 2)과 또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항(제76조의 3)이다. 여기서 근로기준법은 신고한 노동자 및 피해 노동자 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경우에만 벌칙 규정을 두고 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그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행하더라도,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도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피해 노동자 등에게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피해자의 요청에 의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행위자에 대해서 징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든지 말든지, 그에 대한 신고를 하든지 말든지 신고한 노동자와 피해 노동자 등에게 해고 등의 불리한 처우를 하지만 않으면 손 놓고 가만히 있어도 회사에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직장 내 성희롱 금지와 비교해 보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률에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이라는 규정이 있다. 이 법은 직장 내 성희롱을 할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성희롱 발생이 확인된 경우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등의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지 않으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으나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여 사직을 하는 경우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 고용보험법 시행규칙 [별표 2]가 2019년 12월 31일에 개정되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19년 1월 서울의료원의 故 서지윤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유족과 시민대책위에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 서울시가 3월에 대책위를 꾸렸고, 9월 6일 대책위는 故 서지윤 간호사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고인의 사망은 관리자와 조직환경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발표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괴롭히다'를 '괴롭다의 사동사'라고 정의하고 있고 '괴롭다'는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로 정의하고 있다. 즉, 괴롭힌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인 것이다. 故 서지윤 간호사의 경우처럼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무서운 행위이다. 한 사람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유족이 겪는 고통도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것은 그 상대방뿐 아니라 그 가족과 지인들까지도 괴롭히고 크나큰 고통을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드라마에서 들었던 대사가 있다.
“사람들은 왜 칭찬하기보다 흉보고 욕하는 것을 더 좋아할까요?”
“칭찬하는 것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쉽고 재밌으니까.”
물론 모든 괴롭힘이 재밌고 쉬워서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괴롭히는데 정당한 이유가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만일 스스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유를 만들어 누군가를 괴롭히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고 있다면,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 이 성경구절을 떠올려 보자.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오 18,10)

직장 내 괴롭힘과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한 가지 더 말해 보고자 한다. TV 뉴스를 보거나,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주 52시간제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9월 15일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1주간의 법정 노동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되었다. 그 이후 2018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한결같이 주 40시간제라는 용어를 써 왔다. 2018년에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을 포함하여 총 일주일에 68시간을 일할 수 있었음에도 이 시간들을 다 포함한 주 68시간제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되었건, 경영계가 되었건, 노동계가 되었건 주 40시간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2018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갑자기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하여 주 52시간제라고 부르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주 68시간제라고 말하지 않았으면서 왜 이제는 주 52시간제라고 말할까?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아! 난 법이 개정되면서 주 52시간제가 된 줄 알았어. 그래서 당연히 52시간을 일해야 하는 줄 알았지.”

우리나라는 2003년 9월 15일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이후로 계속 법정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이다. 연장근로는 그냥 연장근로일뿐이다. 굳이 연장근로가 휴일근로를 포함하여 12시간으로 제한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다면, 주 40시간제라는 명칭은 유지하면서 ’연장근로 주 12시간제‘ 또는 ’시간외근로 주 12시간제‘라고 부르면 될 일이다.


함께하는 노무법인 부대표 손창배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