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나눔터

말(글), 말(글), 말(글)

노동사목위원회

말(글), 말(글), 말(글)

 

 

서울시장의 죽음 이후, 온라인에는 인식, 사유, 주장의 대립 및 흑백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성숙을 위한 성찰과 제안을 담은 글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어지럽고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도 이와 관련 없는 글에는 쉬이 눈길이 가지 않는다. 가벼운 나는 일이 손에 안 잡혀 멍한 시간을 보내기도 벅찬데, 이런 때에 글을 써야 한다니! 무엇을 쓰든 내 글이 타인의 시선을 붙들 수 있을까 싶다. 그래 이때다! 이참에 “이불킥” 경험 하나 풀어야겠다.

 

2019년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노량진 지역에 터를 둔 천주교 세 단체 실무자들이 만났다. 내가 혼자 상근하고 있던 가톨릭노동청년회, ‘메리워드 청년공간’을 운영하는 예수수도회 그리고 쪽방촌 도시락 나눔을 오래도록 해온 길벗사랑공동체. 노량진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 고시원에 살며 구직활동을 하는 이 등 청년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우리는 설에 고향집에 못가고 있을 청년들과 떡국 한 그릇 같이 하기로 했다. 식사 전에 원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미사도 봉헌하기로.

 

식사준비는 음식나눔에 노하우가 깊은 길벗사랑공동체에서 담당하기로 하고 예수수도회 수녀님들이 홍보를, 가톨릭노동청년회는 본부 공간이 커 장소를 제공하고 미사 준비를 맡았다. 나는 본부를 깨끗하게 쓸고 닦은 후에 ‘신자들의 기도’ 세 개를 손수 적어 준비해놓았다.

 

청년들이 모여들고 미사가 봉헌되고, 아는 이들은 아는 이들끼리 모르는 이들은 모르는 이들끼리 여기저기에 나눠 앉아 식사를 했다. 떡국와 전과 통닭을 야무지게 밀어 넣으며 맛있다고 말해주는 청년들 입이 참 이뻤다. 좁은 주방은, 촘촘히 앉아 전을 부치며 깔깔 웃는 봉사자들의 보람으로 꽉 찼다. 아! 사랑과 기쁨과 보람이 넘쳐 흐르는 아름다운 밤! 식사를 마친 청년들이 모두 돌아가고 세 단체의 관계자만 남아 식탁을 치우고 남은 음식들을 용기에 담고 정리하던 때, 노숙인 청년 둘이 찾아왔다. 맨발이었다.

 

‘헉! 어떻게 해야 하지?’ 

찰라, 말 그대로 그 찰라의 순간에도 나는 생각했다. ‘이들이 환대를 받는다면... 그래서 나중에 나 혼자 있을 때 이 집에 또 찾아오면 어쩌지?’

 

내가 그 아득한 찰라에 갇혀 얼어있을 때 신부님 한 분이 냉큼 주방으로 가서, 지금 들어온 두 명이 먹을 떡국을 다시 끓일 수 있는지 여쭈었다. 주방에 계시던 봉사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마치 매일 본 친구처럼 그들을 환영하고 식탁에 앉히고 옆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신부님과 봉사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눈을 반짝이는 제자들처럼 보였다. 빛이 났다.

 

나는 새로 끓인 떡국을 식탁에 내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 만약 그 공간에 나 혼자였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겁이 나서 혹은 알 수 없는 불편함에 이들을 집 안으로 들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덜 두려웠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거리의 때가 묻은 노숙인 청년의 맨발... 그의 발먼지로 거실바닥이 더러워지면 나중에 닦으면 될 일인데, 다음에 다시 오면 또 문을 열어주면 되는건데, 그런 사소한 것이 염려되어 냉정하게 입장을 거부했다면 그 청년 마음에 새겨질 냉대와 서러움은 어떻게 지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무례가 범해지지 않게 내가 그 시각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사실 미사를 준비하면서 내가 쓴 기도 중 하나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였다. 청소를 싹 끝내고 십자가 아래 차분히 앉아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진심으로 청해야하는 기도가 무엇일지 꽤 긴 시간 고민하고 적은 말이었다. 

“고통 중에 있는 이들과 그 이웃들과 우리 자신들이, 함께 고통을 직면하고, 함께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그런데 나는 그 청년 노숙인의 발을, 그 까만 맨발을 보자마자 환대를 망설이고 함께함을 피하고자 했다.


아...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내 행동을 돌아보며 깨달았다. 내가 진심을 다해 적은 기도가 얼마나 덧없는 말 뿐이었는지, 허울 좋은 미사를 위한 몇 마디 말에 지나지 않았는지... 부끄러움에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많이 울었다.

 

 

나는 달라질까?

이 분명한 경험을 통해서 교훈을 얻고 진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다른 날 같은 상황이 다시 오면, 내 첫반응은 그때와 다를 수 있을까?

 

생각과 마음과 말(글)과 행동, 그 사이 사이가 아주 멀다는 것을 매일 매일 체험한다.  

내일 나의 행동은 그저 부끄러운 고백의 속편일까 아니면 깨우침 위에 일군 변화일까?

 

말과 글이 넘치는 요즘이다. 말과 글에 담아 내고자 하는 것의 본질이 실제 행동으로 발화되기를, 그리고 그것들이 선을 지향하는 것이기를 희망한다. 

 

“이제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

자발적 열의에 어울리게 여러분의 형편에 따라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

 (2코린 8:11)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박효정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