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
우리 사회는 너무나 위험하다. 한 해에 2,400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사망한다. 이마저도 산재로 인정된 통계일 뿐, 이 통계 안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들도 많이 죽는다. 그런데 위험하기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수많은 이들이 죽고, 가스누출 사고와 폭발사고로 지역 주민들이 피해를 입으며, 철도와 지하철, 항공기와 선박의 승객들이 사고로 사망하고, 건물이 무너져 사망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존중했다면, 정부가 인허가를 제대로 하고 관리감독을 엄격하게 했다면 죽지 않아도 될 목숨들이다.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기업들이 안전 비용을 아끼기 때문에 이런 죽음들이 생겨난다. 기업들은 비용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런데 안전장치 비용보다 사람의 목숨 값이 너무 싸니,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2008년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화재 참사가 나서 무려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원청기업이 받은 처벌은 2000만 원, 즉 사망 1인당 50만 원의 벌금이 다였다. 또한 진짜 책임자들은 모두 피해 가고, 말단 관리자들만 책임을 졌다. 그러니 안전조치에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이들이 안전을 위한 비용을 투자할 리가 없다. 이것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그래서 제대로 책임을 지게 하는 법이 필요하다. 물론 엄격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이 대다수이고, 재범률이 97%에 이르는 상황에서는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것만으로도 예방이 된다. 그런데 단지 처벌을 강하게 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그동안 책임을 지지 않았던 이들, 즉 최고 경영책임자와 원청기업, 기업 그 자체, 그리고 공무원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고자 함이다. 그래야 그들이 안전조치를 위해 나서게 된다.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며,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출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주요 내용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와 시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노동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기업이 시민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길 리는 없다. 그래서 노동자와 죽음과 시민의 죽음 모두에 대해 기존의 법률 위반에 근거한 처벌에 더하여 가중 처벌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사업 또는 사업장만이 아니라 공공교통수단이나 인체에 해로운 원료나 제조물을 취급하는 경우에도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에 대한 의무를 갖도록 하고, 그 의무 위반에 대해 가중하여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나 시민이 사망했을 경우 그동안 책임에서 빠져나갔던 기업의 최고책임자의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하청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원청의 책임, 건설이나 조선업에서는 발주처의 책임도 묻도록 했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기업’ 그 자체에 대한 강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그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조직문화 때문에 죽음에 이르면 더 가중하여 처벌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인허가의 권한이나 관리감독의 책임을 가진 이들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재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자나 시민이 사망해도 지금까지는 그 입증책임을 피해자들이 져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증거 은폐를 하고 수사방해도 했다. 그래서 사고조사를 방해하거나 조작하는 일,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기업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조항도 담았다. 산재사망에 법원이 관대한 처분을 해왔던 것을 바꾸기 위해서 유무죄의 선고는 법원에서 하되, 피해자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1/3이 포함된 전문가위원회를 통해서 형량에 대한 의견을 듣도록 했다.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노동자나 시민이 사망하는 경우 기업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만들고, 재발방지대책을 제대로 이행하는지에 대한 이행 관찰 제도도 담았다.
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운동으로 함께
이 법은 법률가들과 활동가들이 모여서 만들기는 했지만 이 조항 하나하나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이 나서서 왜 현실이 바뀌지 않는지 질문했고 이 법안에 죽음의 재발방지가 담길 수 있을 것인지를 질문하며 조항을 하나씩 가다듬었다. 피해자와 유가족은, 국회의원 면담을 비롯하여 전국 순회까지 계획하며 내 일상과 가족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다른 이들이 이런 죽음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분들의 손을 잡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 두 번이나 상정되었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기업 규제라는 이유로 국회의원들이 꺼려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제대로 논의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국민 동의 입법이으로 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 한 달 안에 국민 10만 명이 동의 서명을 하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되도록 만든 제도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입법 발의자를 모으고 이 분들이 나서서 8월 말부터 진행되는 국민 동의 입법 청원에 많은 분들이 함께하실 수 있도록 설득하려고 한다. 모두가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법안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사람의 생명이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 많이 알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동참하는 ‘운동’을 만들어낼 때에만 이 법도 실효성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쇄기에 깔려 사망한 김재순님, 청주방송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학PD, 그리고 코로나19로 가족이 사경을 헤매고 있기에 회사에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쿠팡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하는 데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힘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