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조금은 가신 이른 저녁 무렵 무심히 내달리는 차들이 지나는 길병원 사거리 한켠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회 현장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보니 다리조차 뻗을 공간도 없는 통신탑에 매달려 140여 일을 버틴 택시 노동자 고영기님께서 계신 곳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맹렬했던 폭염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공짜노동 근절! 시행령을 마련하라!’
통신탑에 같이 매달려 펄럭이는 프랑카드가 무더운 여름날 저녁 바람에 공허하게 흔들려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택시 노동자 고공농성 수요 문화제’를 시작하며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연대자들의 지지 발언을 들으며 문화공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긋한 나이지만 등자보(몸피켓)를 입고 앉은 택시 노동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회사에 낼 사납금을 채우고 다만 얼마라도 더 손에 쥐어보려고 무리했던 날들과 장시간 운전으로 고단했을 노동이 그대로 스며 깊은 주름과 피곤한 몸으로 퇴적된 듯합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희끗한 흰머리를 감출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빼앗기고 유예되고 미루어진 권리를 알게 된 이들입니다.
‘일한 만큼 월급 받자!’
오래된 사납금제는 사납금 외의 수입을 노동자가 갖는 형태이지만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야 했습니다. 운행에 필요한 경비나 관리부담은 노동자에게 떠 넘겨졌습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995년 ‘운송수입금 전액 관리제’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전액 관리제는 정착되지 못했고, 이름만 달리하여 변형된 사납금제도로 오래도록 지속되었습니다. 2019년 사납금제를 폐지하고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규정하도록 하는 ‘택시발전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역별 적용 시기를 달리하며 미루어지고 유예되고, 결국 2026년 4월 23일 또다시 유예되며 더 불리하게 개악되어 처리되었습니다. 택시 노동자의 권리는 아주 오래도록 무시되어왔고 제도개선을 기대할 수가 없는 상황으로 미루어졌습니다. 밀리고 또 밀려 고공농성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실제 평균 운행시간은 하루 10-12시간에 이르는데도 택시노동을 간주근로제에 포함시켜 소정근로시간을 짧게 산정하여 택시 노동자가 받는 기본급이 적어질 수밖에 없는 이 구조를 바꾸어 달라는 외침입니다.
우리나라 택시 서비스는 외국과 비교하여 저렴한 요금과 고도화된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편리한 교통수단입니다. 그동안 택시업계가 경영난을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택시발전에 걸맞게 노동자의 처우 개선도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안전한 운행이 사고를 예방하고 나아가 시민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도 저물어 어두워지고 택시 노동자들은 집회를 마치며 꼭 ‘불패의 전사들!’을 합창합니다. 노래의 가사처럼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이들을 자신들이라 여기는 듯합니다. 택시 노동자들의 오래된 외침이 멈출 수 있길 바랍니다. 저마다의 일터로 돌아가 운전대를 잡고 즐겁게 일하시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얼마 전 노동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했다는 소식에 희망을 품어보며 고공농성이 더는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 고영기 택시지부 총무국장은 지난 3월 29일 간주근로제 폐지를 요구하며 맹성규 의원 지역사무실(인천 남동구) 앞 20m 높이 통신탑에 올라 160일째(9/4)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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