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목이야기

생각을 나누다

'모든 사람들의 희년’을 꿈꾸며

마태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곤 제주도뿐이었던 저는 작년 12월 큰 도전을 했습니다. 2025년 자비의 희년에 떠나는 생애 첫 이탈리아 여행. 이 여정은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풍경들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로마의 고풍스러운 골목을 걷고, 화면으로만 보던 거장들의 작품과 바티칸 박물관의 예술품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번 여행은 가톨릭교회가 선포한 ‘희년’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이루어져 의미가 더 깊었습니다. 여행 메이트가 신부님이었던 것과, 현재 로마에서 사목 중인 본당 시절의 인연인 신부님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축복이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성지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역사와 신앙의 유래를 상세히 설명해 주셨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관광만이 아니라 순례자로서 은총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웅장한 대성당의 제대 앞에서 기도를 바치던 그 순간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하지만 긴 여행을 마치던 마지막 날, 로마에서 유학 중인 한 청년과 신부님들이 함께한 식사 자리는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 중에도 틈틈이 수녀님들과 노숙인 봉사를 해왔다는 그 청년은,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희년의 이면을 담담히 들려주었습니다.

 

“사실 이곳의 가난한 이들은 희년을 싫어합니다.”  

 

자비와 용서의 해인 희년을 정작 가장 가난한 이들이 기피한다는 말이 먹먹하게 다가왔습니다. 희년을 맞아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위해 대대적인 도시 정비 사업이 벌어지면서,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던 이들은 머물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야 했습니다.  

 

치솟는 물가 또한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순례객들로 북적이는 도시는 생필품 가격마저 올려놓았고, 하루 한 끼가 간절한 이들에게 희년은 기쁨의 해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는 혹독한 시기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각이 깊어졌던 지점은 그들이 마주한 ‘장벽’이었습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자비를 입는다는 ‘희년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늘어선 인파 속에서, 남루한 행색의 그들이 삼엄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기피 대상이라는 이유로 희년의 은총 안에서조차 철저히 소외되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문득 지난해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진행했던 가톨릭청년교리모임 ‘울림’에서 보았던 영상 한 편을 떠올렸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준비할 때, 도시 정비라는 명목으로 쪽방촌 등 빈민가를 허물고 이웃들을 강제로 몰아냈던 기록들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세계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그리고 국가적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환경을 정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우리 이웃들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노숙인들이 겪는 현실은 그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거룩한 해를 준비하는 것일까요? 외적인 정돈을 위해 정작 우리가 먼저 품어야 할 약한 이웃들을 밀어내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지 생각하게 됩니다. 희년의 목적과 취지를 알리기 위해 쏟는 에너지가 정작 그 안에 담겨야 할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껍데기뿐인 형식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가톨릭의 희년은 하느님의 자비가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드러나는 거룩한 해입니다. 진정한 자비는 웅장한 성당의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이 아니라, 그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이들의 손길 위에 머물러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희년.”  

 

이탈리아 노숙인들이 내뱉었다는 그 한마디는 이번 여행에서 저에게 가장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그들에게 희년은 모든 이의 은총이 아닌, 준비된 특정인들만을 위한 시간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희년의 화려함에 가려, 보지 못했던 낮은 곳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문을 통과하는 형식적인 절차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소외된 이들을 향한 ‘자비의 문’을 먼저 여는 일입니다.  

 

희년의 본래 의미를 기억하며, 앞으로 맞이할 모든 은총의 시기가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이 먼저 초대받고 환대받는 진정한 기쁨의 장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웅장한 성전의 문보다 이웃을 향한 마음의 문을 먼저 여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희년의 준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