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호텔 해고자들이 지금 호텔 로비에 들어가서 진짜 사장 주명건 호텔 소유주가 협상에 직접 나오도록 요구하며 농성을 한 지 10여 일이 지났다. 나도 지난 1월 28일 저녁에 시간을 내서 투쟁 문화제에 함께 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전염병 대확산으로 투숙객이 줄어들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2021년 12월 10일에 해고되었다. 이들은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24년 12월 18일 대법원은 코로나19 경영 악화를 이유로 세종호텔이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요구는 이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2월에 고진수 지부장이 호텔 앞 도로 위 구조물에 올라가 코로나19 종식 이후 해외 관광객의 유입으로 호텔 영업이 어느 정도 정상화된 만큼 해고했던 노동자들을 복직시키라고 요구했고, 노동조합은 호텔 측과 협상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는 336일 만에 그 구조물에서 내려와 직접 협상에 들어갔다. 이후 노동자들은 호텔 로비를 점거하며 주명건 소유주가 협상에 직접 나올 것을 요구했다. 그가 결정권을 가진 실질적인 소유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텔 측과의 협상은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리고 경찰은 2월 2일 호텔 로비에서 농성 중이던 조합원들과 연대 시민들을 연행했다.
오래전에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누군가를 위한 ‘꿀밥’ 나눔이 있었다. 나는 고진수 노동자를 그 ‘꿀밥’ 나눔에서 만났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음식을 내놓고 있었고, 그도 일식을 요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손님을 환대한다는 마음으로 같은 주방을 나누어 썼던 경험을 공유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가 세종호텔 식당 주방에서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했을지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사실 호텔은 손님을 환대하는 공간이다. 그를 비롯한 다른 노동자들 역시 환대의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재난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만약 재난이 이유였다면, 재난을 극복한 뒤 복직시키겠다는 약속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는 노동조합 활동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사법 권력 또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호텔 소유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고 노동자들의 마음은 억울함과 분노로 물들었고, 그 감정은 다시 싸움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1년 전, 고진수 지부장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도로 위 구조물에 올랐다.
내가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엄호’ 활동을 하는 이유는 그들의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쉽게 해고하는 행위는 안전한 삶의 경계를 짓밟는 폭력이다. 나는 법 해석보다 피해자가 느끼는 억울함과 분노 속에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법 권력이 모호한 법 해석을 통해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작동했던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2천 년 전 예수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편에 서서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던 권력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래서 나는 잘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무시당하고 폭행당하는 노동자들에게 나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싸움에 연대해 왔다. 특히 고진수 지부장이 구조물 위에 올라가 있던 동안, 나는 동료 신부들과 수도자들, 신자들과 함께 매주 월요일 그 아래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이 연대가 투쟁의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의미는 분명하다. 우리의 연대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복직 요구는 정당하다. 좌절하지 말고 함께 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싸움은 세종호텔 노동자들만의 복직 투쟁이 아니다. 오늘날 노동자는 쓰다 버려지는 소모품 취급을 받고 있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왜 노동자만 희생해야 하는가. 심지어 방만한 경영의 책임마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는 사용자들에게 위기 탈출의 수단이 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노동자들이 미래를 꿈꾸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가거나 서서히 죽어갔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동화와 AI 확산으로 밀려날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이 싸움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다.
인생의 성숙함은 나이나 학식에 비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재산, 지위, 능력 같은 외부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받쳐주는 힘이 아니라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힘이다. 내부로부터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의 권력은 쉽게 폭력이 된다. 반면 내부로부터 힘을 얻은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드러낼 수 있고,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며 고통에 공감한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자주 말한다. “완주하려면 버리고 가야 한다”고. “죽으면 두고 갈 것을 왜 그렇게 많이 가지려 하는가.” 이 말은 지금 세종호텔 소유주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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