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평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22년 1월 1일 제55차 세계평화의 날을 맞아 지속적인 그리스도 평화 건설을 위한 세 가지 길로 세대 간의 대화, 생태적 회심을 이끄는 교육, 그리고 인간적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는 노동을 강조하셨다. 특히 노동의 필요성에 대해 교황은 “노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에 속하며, 성장과 인간 발전과 개인적 성취의 길”이라고 하시면서 “그 어느 때 보다 시급한 일은 세계 전역에서 공동선과 피조물 보호를 지향하는 온당하고 품위 있는 노동 조건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노동이 지니는 평화적 의미에 대한 성찰은 현재 인류가 당면한 코로나 위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로 상징되는 지구 생태계적 위기의 해법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류 공동체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익숙해져 온 자기중심적인 단절적 세계관으로부터 자신과 이웃 그리고 자연환경과의 생태계적 연결성을 깨닫고, 공동선 증진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가진 건강함을 증진하는 통합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인간 세계관은 그 자신이 경험하는 노동의 현장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직장에서의 일이 생존을 위한 생업에 그치고, 자기 일이 소모적인 생산요소로 치부될 뿐이라면 삶의 중요한 가치와 생산의 현장은 서로 단절될 수밖에 없다. 직장에 출근하는 순간 일은 일일 뿐이고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별개의 일일 수밖에 없게 된다. 마치 정글과도 같은 경쟁적인 작업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이는 제로섬 게임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 대상이 될 뿐이다.

단절적 세계관은 노동이 삶의 가치와 통합되지 않는 단절적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 깨어있는 시간인 직업 현장에서, 참 자신과의 단절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이웃과의 단절, 그리고 자연환경과의 단절을 쉽게 이루게 된다. 즉, 인간 생태계와 사회 생태계 그리고 자연 생태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고, 그 출발은 우리 자신의 영적 건강함을 뜻하는 인간 생태계의 풍요로움인 것이다. 노동을 통해 인간 존엄성과 품위를 경험하고 자기 삶의 소명을 발휘 할 수 있을 때 단절적 삶은 통합된 삶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제 3년째를 맞이하는 코로나 팬데믹은 지금 추세로 볼 때 올해 2022년 말 때쯤에야 그 급속 확산세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새로운 치명적 변이가 없을 것이라는 전제와 선진국의 보다 헌신적인 백신 공유에 대한 기대 그리고 경구용 치료제의 투여를 통해 코로나를 계절성 감염병 정도로 잡힐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인 가정이 따른다.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코로나 팬데믹 또한 지나가리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 코로나가 2019년 말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 반응은 공포였고 이후에는 분노였으며 이내 시간이 지나며 무기력한 체념과 수용으로 바뀌었던 것 같다. 이제 3년째를 맞이하며 이 모든 혼돈의 고통을 안겨준 코로나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기후변화, 생태와 문화 다양성의 감소, 사회 불평등, 글로벌 금융위기, 핵전쟁의 위기, 자살률의 급증 등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고, 코로나는 이 모든 지구적 문제의 총체적 위기가 응축된 것이었다. 인간 생태계, 사회 생태계, 그리고 자연 생태계가 서로 얽혀있는 통합 생태계의 복합적 위기 징후가 응집된 결과로 코로나는 태어났다.
지구촌이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체제로의 질주를 시작했던 1970년대, 이미 ‘성장의 한계’를 예언한 로마클럽은 ‘코로나라는 위기의 상황은 (emergency)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창발할 수 있는 (emergence) 절호의 기회’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발간하였다. 코로나와 같은 전 지구적인 재난은 물론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동시에 매우 값진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인류가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산업화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질주하였던 약육강식 논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원리였다. 이는 우리가 이웃과 지구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단절을 이루게 했다. 그리고 코로나는 지금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지난 2년간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론 백신과 치료제가 전염병의 인류 세적 정복을 또 한 번 적어도 얼마간은 경험하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생태적 위기는 그 근본 원인이 인간에게 있고, 인간의 의식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칙서 「찬미 받으소서」에서 말씀하셨던 ‘생태적 회심’이 우리 모두에게 요청된다.

새해 첫날 그리스도의 평화 건설을 위한 중요한 한 길로서 노동을 강조하신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미증유의 위기 상황 앞에 놓여있는 인류 공동체에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이제 인간적 존엄과 품위를 잃지 않으며 온전한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가는 노동은 인류의 지속할 수 있는 미래와 궁극적으로는 지상의 평화 건설을 위해 굳건한 초석이 되는 것임을 깊이 성찰해야 할 때이다. 인류를 단절적 세계관으로 내몰았던 원인도 산업화 시대의 노동에 있었고, 인류를 통합적 세계관으로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미래의 해법도 노동에 있다. “그리하여 노동이 전 인류,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의 유산(遺産) 증대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동하는 인간, 10항)

박용승 교수 |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노동사목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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