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로운 휴식과 여가를 위하여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에 대해서 아시나요? 요새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와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그린 뉴딜, 디지털 뉴딜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 ‘뉴딜’은 1929년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미국 정부가 시행한 뉴딜 정책에서 시작되었고,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완전고용과 복지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케인즈의 이론이 뉴딜 정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케인즈는 2021년 지금쯤이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일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남는 시간은 여가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소득이 증가할수록, 한 시간 더 일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가져다주는 행복보다는, 한 시간 더 여가를 누림으로써 얻는 행복이 클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출처: Spring Fed Images unsplash>
우리는 과거보다 일을 덜 할까요? 2019년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3위를 차지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주당 40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03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정하고 연장노동은 12시간까지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법을 잘못 해석하여 주당 68시간까지 일했던 노동자들이 있었고, 이를 바로 잡아서 이제는 연장노동까지 포함하여 주당 52시간만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당 52시간 상한제가 정착되면 OECD 국가들 사이에서 서열 순위는 낮아지겠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 것 같습니다. 직장에 다니던 다니지 않던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치킨집 사장님은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가게문을 최대한 열어 둡니다. 학부모 모임과 봉사와 가족과 친지를 돌보느라 바쁜 전업주부에게 논다고 하면 화를 낼 것입니다. 이제는 많은 여성과 고령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일을 하니 전보다 노동을 하는 인구 비중이 커졌습니다. 학원과 과외 때문에 아이들조차 학습시간이 길어 자유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지요. 취업 상태도 아니고 구직활동도 안 하는 ‘비경제활동인구’도 취업을 위해 각종 자격증과 고시 공부를 하느라 여유 시간이 없습니다. 거기에 인터넷, 플랫폼 앱, SNS 등 문명의 이기는 알게 모르게 노동과 노동 아닌 삶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수시로 일터에서 문자가 오거나, 일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거나, 더 좋은 일자리를 검색하겠지요.

<출처: christian wiediger unsplash>
돈을 버는 일에 몰입해야 하는 시간이 줄지 않는다면 쉼과 여가 시간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어딘가에서 시간을 절약해야겠지요. 사람마다 여러 가지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택배와 포장 음식 배달 이용으로 가사노동 시간을 절약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까운 가게에 없는 물건들 위주로 온라인 쇼핑을 했다면 이제는 매주 직접 하던 장보기도 마트 홈페이지에서 여러 번의 클릭을 통해 해결합니다. 집에서 음식 준비를 하지 않고 외식을 하던 것에 그치지 않고 앱 주문으로 음식을 배달시킵니다. 설거짓거리도 생기지 않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택배 물량과 배달 음식 주문은 폭증했다고 하지요.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건강을 유지하고 쉼과 여가를 누리게 된 것은 물류, 택배, 음식업 종사 노동자들 덕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과로로 쓰러져가는 택배 노동자들과 쌓여가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류센터 하루 알바 경험을 보고서로 제출한 한 학생에 따르면, 몇 초 움직이지 않으면 소지하고 있던 기기에서 경고음이 울렸고, 외딴곳에 위치한 물류센터에서 시내로 나오는 버스를 운행해주지 않아서 사실상 강제 야간 노동을 했어야 했다고 합니다. 최대한 빠른 음식 배달을 위해 과속하는 오토바이와 제 차가 부딪힐 뻔한 순간을 겨우 피했을 때는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한 끼를 편리하게 해결하고 난 뒤 내놓는 일회용 식기들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 문제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의 생성과 전파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스틱 수요와 쓰레기 증가는 기후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합니다. 플라스틱 생산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면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막자는 파리 기후 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래에 또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네요.

간추린 사회교리 284항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도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림으로써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노동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의 삶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 마디 보태고 싶습니다. 나의 휴식과 여가의 추구가 다른 사람, 그리고 먼 미래에 올 후손의 휴식과 여가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쉼과 여가의 정의로운 배분이 필요합니다.
윤자영 교수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 노동사목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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