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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의 기억, 할 수 있다는 믿음!

노동사목위원회

성취의 기억, 할 수 있다는 믿음! 


 나는 학생들의 맑고 깊은 눈빛을 보면 매우 게으르던 나의 학창 시절로 돌아갈 때가 있다. 과제와 시험공부를 매번 미루다 하루 전날 벼락치기 하던 나.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만 했던 나. 발표를 못했던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나. 의지에 비해 실천이 모자라서 목표했던 대학을 가지 못했던 나. 이렇게 내 단점부터 말하는 이유는, 학창 시절에는 내가 ‘논술학원 선생님’이란 직업을 갖게 될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공포가 있었다.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다가 말을 더듬어 화장실에 들어가 울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강사라니. 그것도 논술 강사라니. 

 

  대학교 졸업 논문을 발표할 때도 교수님과 친구들 앞에서 너무 떨려 말을 심하게 더듬었고,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신기하게도 자신이 할 수 없는 영역을 늘 욕망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없는 것을 탐하고 마음 한 곳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그리니 말이다. 



<출처: Photo by Daniel Öberg on Unsplash>

 

  나는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것은 분명했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무언가 쓰는 것. 그래서 앞뒤 재지 않고 지방의 모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업적이다. 전공을 살려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출판사의 작가 또는 기획자 그리고 신문사의 기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쓰기 실력은 기본이고 더불어 프레젠테이션 능력 즉, 말발도 필수였다. 고군분투하던 나는 원하는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자 가난했던 집안 형편을 핑계로 나 자신과 타협했다. 전공과 상관없어도 좋으니 발표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고정 수입이 보장된 사무직을 찾자! 그렇게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살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인간은 참 모순적인 존재임을 말하고 싶다. 전공을 살리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그러니까 마흔을 넘기 전에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없을 거라는 불안을 느꼈다. 유행처럼 번지던 단어인 ‘인생 이모작’, 그 의미를 내 삶에 실현하고 싶어졌다.  



<출처: new york times>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6개월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어쩌지?’, ‘내가 나를 스스로 먹여 살려야 하는데, 생계는 어쩌나?’ 막연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잡음은 제거하고 호기롭게 핑크빛 미래만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30대 후반에 지원할 수 있는, 전공을 살리며 말발이 필요한 직업군을 조사했다. 범위가 넓진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득이 되었다. 관련 전공자여야 하고 강의를 해야 하는 ‘논술 강사’가 내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직업으로서 나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가슴이 뛰었다. 공포와 설렘이 뒤죽박죽 섞인 감정. 나는 내가 소리로 내뱉는 모든 문장을 더듬으며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순간의 창피함을 견뎌낼 힘이 있다면 어쩌면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내 안에 있음을 느끼자 지금의 나는 창피하고 부끄러워 숨기만 바빴던 어린 시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현재는 모 논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지 벌써 1년이다. 

 

  강의 중에 살짝 말을 더듬어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 지가 1년인 것이다. 물론 수업 시간마다 나를 지배하는 긴장감은 늘 존재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 나는 말을 더듬기도 하지’라고 인정을 하고 수업을 하다 보니 예전처럼 화장실에 들어가 울고 싶을 만큼 창피하진 않다. 어느 날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학생으로부터 “선생님처럼 국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딱 한 번이었지만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출처: Photo by Hybrid on Unsplash>

 

  ‘성취하는 과정의 기억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요즘의 나는 ‘어떤 상황에서 내가 특히 긴장하여 실수하는지, 다음번엔 어떻게 준비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지, 만약 불가항력으로 순간 말을 더듬었다면 어떤 방법으로 웃으며 넘어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이 데이터들은 나의 보물이다. 먼 미래, 100세 시점에서 나의 요즘을 돌아본다면 ‘그때 단점과 결핍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추억하고 싶다. 이제 1년이라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아이들의 맑고 깊은 눈빛을 보면 가끔 내 과거의 게으름이 보이지만, 뿐만 아니라 또 가끔은 내 미래의 성공과 뿌듯함도 보인다. 

 

논술학원 강사, 청년노동자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