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나눔터

친구를 위한 노동

노동사목위원회

 “친구를 위한 노동”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함께 주일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지금은 같이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당시 아르바이트로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제가 함께 배달에 나섰습니다. 새벽 3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신문 배급소에서 가서 신문을 수령하고 해가 떠오를 즈음까지 각 가정에 배달했습니다. 신문을 실은 카트는 너무 무거웠고,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 다리는 점점 아파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따라나섰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친구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괜히 많이 미안했고, 또 고마웠습니다. 그래서일까... 동이 트기 전 어두운 밤, 차가운 공기, 고요한 적막, 손에 말아 쥔 신문.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친구는 그렇게 꼬박 한 달을 일하고 30만 원 남짓한 급여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사기에도 부족한 돈이었고 또 너무나도 귀한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늘 그 돈으로 주일학교 후배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떡볶이, 치킨, 아이스크림 등을 사주곤 했습니다. ‘왜 그렇게 쓰냐고, 널 위해서도 좀 써.’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맛있게 먹는 동생들 안에서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말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노동이 거룩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활동을 노동이라고 한다.’ 노동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습니다. 또한 노동을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의 다양한 담론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노동을 조금은 어렵고 무거우며, 우리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있어서 노동은,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느낀 노동의 가치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동생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기 위해서 애쓰는 선한 마음’의 표현이었고, ‘동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 그리고 노동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바탕에는 노동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은 단순한 일이거나 또는 돈으로만 평가받는 것이 아닌 ‘거룩한 것’입니다. 내가 그리고 네가 흘리는 땀 한 방울, 나의 그리고 너의 기꺼운 수고로움 덕분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에 빚을 지고 있고, 감사함으로 그리고 나의 거룩한 노동으로 갚아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동은 인간에서 비롯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을 지향하며 인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
(간추린 사회교리 272항)

 


노현기 다니엘 신부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목국 기획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