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8일) 여성의 날 성명서
WMCW의 세계 여성의 날
여성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2-24).
이처럼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으로써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하게 인격적 품위를 부여하셨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교회는 자기의 성(性)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남녀 각자가 할 일(가톨릭교회 교리서 2393)이라고 가르친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한 인격을 바탕으로 존엄한 인간 공동체를 이루도록 요구하시는 것이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위, 기회, 처우 등에서 성차별이 존속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서까지 인격적인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 여성들이 많다. 더구나 헌법에 남녀평등권과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는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강간과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깨어 있는 이들은 끊임없이 여성의 인간성을 짓밟는 무리에 맞서 비인격적인 폭압에서 여성들을 해방시키고자 부단히 투쟁해 왔다. 하느님의 모상인 여성의 인간 존엄성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하고, 특히 1975년에 유엔이 ‘세계 여성의 날’을 제정한 이후 많은 부분에서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여성들은 불평등과 압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가정, 직장, 학교, 사회 등에서 여전히 성차별이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의 안정과 경제적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힘없는 여성들의 노동, 육체와 영혼을 착취하는 기업과 국가들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더구나 가정과 마을, 직장 등지에서 격리, 고립되어 남성들로부터 성희롱, 성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들이 많건만,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는 아직도 살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당연시되고 있는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성차별과 가정폭력, 많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부당 노동과 이윤 착취, 사회 곳곳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성폭력과 살해를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도처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발생하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대열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정의는 결코 그저 이룩되지 않는다. 불의와 싸워 물리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 모든 억압과 굴욕에서 해방되는 자유 역시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투쟁 그리고 승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우리는 완전한 성 평등을 보장하는 정의를 위해, 자유를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존엄한 우리의 정체성, 우리 몸과 영혼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위해 투쟁하여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때로는 개별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다.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일지라도 여럿이 함께 뭉치면 크고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러니 작은 조직부터 국제적인 연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힘을 모아 함께 투쟁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작은 조직들은 더욱 단단히 뭉쳐 함께 생존하는 힘을 기르고, 이 작은 조직들이 서로 연대하여 사회와 국가 안에서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유기체로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 세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불의하고 불합리한 상황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조직화를 달성해야 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조직들을 통해 가정에서 성차별과 가정폭력, 직장에서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와 기회 불평등, 사회 곳곳의 성희롱과 성폭력, 생존의 위협 앞에서 신음하고 있는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의 생존마저 위협받는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향상은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 역시 단결된 힘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올해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몇 가지 대표적인 불의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력히 촉구한다. 즉, 불평등한 성 의식과 자녀들에 대한 불합리한 성 역할 교육, 미성년 여성들의 노동 강요와 임금 착취, 전통적 관행이나 종교에 의한 여성들의 신체적 억압(소녀들의 할례, 처녀성 강요), 이주여성들의 강제 혼인과 상품화, 불필요한 성형까지 유발하는 미모지상주의 등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4-5)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말씀에 순명하는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여성이 결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신다. 따라서 여성들은 남성과 대등한 존재로서 결코 부족하지도 약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성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가톨릭노동장년회 전국협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