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소식 6월호
도로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만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세상과 교회>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장경민 신부 인터뷰
지난 해 12월 1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경촌 주교와 정수용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가 30미터 높이 광고판 위에서 농성중인 케이블방송 씨앤앰 해고 노동자 강성덕, 임정균 씨를 만나기 위해 크레인을 타고 농성 현장에 올랐던 적이 있다. 이들은 해고된 비정규직 109명의 복직을 요구했다. 씨앤앰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입주해 있는 서울 신문로 파이낸스센터 앞이었다. 마침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빈민사목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가 해고자 복직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이날 유경촌 주교는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신성함이 지켜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기도하며, 이들이 처한 "너무나 불행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 장경민 신부는 노동자 가운데 더욱 소외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한상봉
서울대교구는 최근까지 이주노동자사목에만 치중해 왔는데, 국내 노동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4년부터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경민 신부를 서울 보문동에 있는 노동사목회관에서 만났다. 장 신부는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더 상황이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처음 노동사목을 시작할 때엔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 등 큰 사건만 알고 있었는데, 노동계 소식을 자주 접하다 보니 아예 세상 사람들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으면서도 우리 생활 가까이 있는 노동자들이 많더라고요. 이른바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인데요, 누구나 아는 아르바이트 정도가 아니었어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앉아계신 분들도 다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지만, 도로공사에서 관리하죠."
장경민 신부가 전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사정은 참으로 딱했다.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늘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속사정은 달랐다. 이들은 간접고용 노동자여서 재계약 때 다시 이 일자리가 이어질지 불안하다. 때로는 회사 간부들이 뒤에 서서 감시하며 수많은 항목에 평가점수를 매긴다. 장 신부는 "이 분들이 기쁘게 일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도구처럼 일하는 게 안쓰럽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해 하청업체랑 돈을 확 깎아 계약하고, 하청업체는 이윤을 남겨야 하기에 다시 더 낮은 임금으로 인력을 고용하는 거죠. 그마저도 근무태만으로 찍혀 일자리를 잃을까봐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몇 백 미터 떨어진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지하통로에서 용변을 보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이 분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언론에서는 다뤄주지도 않아요."
▲ 농성 중인 씨앤앰 노동자들을 축복하고 있는 유경촌 주교. ⓒ공동취재단
700여 개나 있다는 서울시내 중앙차로 버스승강장 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청소나 전단지 관리 등 버스승강장의 유지관리 업무도 서울시가 아니라 하청업체에서 고용한 노동자가 맡고 있다. 이들 역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다. 그밖에도 장경민 신부는 이미 많이 알려진 아파트 경비노동자, 대학교의 청소노동자, 학교급식 용역노동자들이 처한 고용불안과 저임금 상황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직접 정책적으로 이들을 지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처한 상황을 교회 안에서라도 더 많이 알리려고 노력한다.
노동사목위원회가 처음 연대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었다. 노조집행부를 만나고 미사도 함께 봉헌했다. 이 노동자들 역시 간접고용 노동자다. 서비스센터에서 연락이 오면 현장으로 달려갈 때 언제나 '삼성전자' 마크를 단 작업복을 입고 가지만 사실 하청업체 직원이다. 임금도 기본급 없이 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한여름 에어컨와 냉장고를 고쳐 번 돈으로 일 년을 버터야 한다. 그런데 관리는 삼성전자에서 직접 한다. 삼성전자는 깔끔한 회사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이들 노동자가 고객에게 날려야 하는 멘트도 다 정해 놓았다. 감정노동자가 아닌데도 감정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전봇대를 타야하고,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려 실외기도 고쳐야 하는데 언제나 양복바지에 구두를 신어야 하니 위험하기 그지없다. 일하다 다쳐도 평점이 깎일까 봐 병원도 제대로 못가고 대충 넘어간다. 장경민 신부는 이런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보면서 "새로운 노예노동의 구조"라고 비판한다.
장경민 신부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동자"라면서, 이 사람들이 현장에서 겪는 부당함에 항의하고 변화를 꾀하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의무"라고 말한다. 성당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노동자'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일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사는 현장이 신앙생활이 이루지는 곳이기 때문에, 사제든 신자든 모두 노동사목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다."라고 말한다.
한상봉 기자 | unexpected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