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강론 감정노동과 우리 사회 6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제정에 대한 소고”
2019.7.28. 연중 17주간 주일 강론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위원장
이주형 요한 신부.
✝ 찬미예수님
오늘은 감정노동 기획강론과 관련하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제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지난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노동 관련 문제로 직장 내 위계와 위력에 의한 갑질, 고객의 갑질, 감정노동 등이 심하고 노동으로 인한 사회 갈등과 현안이 많은데 금번 관련 법령을 통해 정부와 입법기관이 그런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식한 흔적이 보입니다. 교회적 시각에서 수호하는 가치는 인간 존엄, 약자 보호입니다.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교회적 시각으로 보기에 이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찬성할만하고 좋은 입법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노동의 가치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숙제도 많고 갈 길도 멉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새로 마련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내용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번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근로기준법 6장 안전과 보건 76조에서 안전과 보건에 대한 내용에 2제와 3제를 새롭게 덧붙여 신설한 법령입니다. 6장의 2제 산하 76조의 2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의 정의를 명시하고, 3제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그리고 그 아래 1부터 6항까지 있으며 109조에서 벌칙으로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3천만 원 이하 처벌을 명시하는데 신고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었을 시 사용자가 받는 처벌을 뜻합니다.
일단 이 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용대상에 관한 문제를 거론할 수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제한적으로 적용됩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도 마찬가지인데 첫 번째 문제로 현재 이 법은 일단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수와 그 종사자 숫자는 작년 3월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사업장 수는 125만 3681개(서울경제 2019.7.2)이며 570만 5551명 전체 노동자의 26.8%로 추산(서울신문 2018.3.14)됩니다. 그런데 국내 고용환경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5인 미만 사업장들은 열악함, 영세성, 경쟁력 미비, 대기업에 종속, 사실상 월급쟁이보다 못한 수익구조 등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사업장일수록 고용구조나 수익구조가 열악해서 사실 직장 내 관계가 부드럽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이 법이 적용 못 되는 것은 매우 아쉽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 76조의 2제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업무상 적정 범위 넘어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준 것 그래서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디까지가 직장 내 괴롭힘이냐에 관해 논란의 소지가 있다. 물론 명백하게 괴롭힘이자 폭력으로 판단할 사항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괴롭힘의 기준과 판단이 늘 모호하다는 것이지요.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진정 건수들을 보더라도 그 판단에 대한 문제가 늘 발생합니다.
세 번째로 76조의 3제 1항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사용자에게 신고하고, 사용자는 확인을 위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말인즉슨 사내 해결을 원칙으로 한다는 뜻이고 조사의 지휘권이 최종 사용자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일 그 사장이 괴롭히면?”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실제로 며칠 전에 KBS 뉴스에서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사장이 직원에게 다소 과한 언행을 하는 장면을 보도하는 것을 방송했는데요, 그 제목이 “괴롭히는 사장한테 신고해라.”(2019.7.15. KBS 9시 뉴스)였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현실적으로 법이 있으나 마나 한 상황도 가능합니다.
네 번째로 괴롭힘이 발생했고 만일 그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면 그에 대한 조치를 사장에게 할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76조 3제 5항).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단 피해 자체를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고 사장과 가해자가 맘만 먹으면 입증이 어려울 수 도 있습니다. 더욱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대해 사용자가 자체 징계 등을 부과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잘못 사용될 소지도 있습니다. 더욱이 외국처럼 직장 내 괴롭힘 자체를 엄격히 처벌하거나 사용자의 미조치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신고자에게(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시 그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용자만을 처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 또한 가해자와 사용자로 하여금 해당 법의 적절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사각지대를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습니다.
정부가 고용환경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좋은 취지에서 만든 법이고 의미 있는 시도이지만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물론 직장 내 부조리가 제도나 법령만으로 당진 해결되진 않겠지만, 경각심을 환기시켜 직장문화를 바꾸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 개선입니다. 일하는 사람, 피고용인, 아르바이트생, 종업원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의 생각과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나의 편리함, 내가 누려야 할 고객의 권리, 내 욕심만 먼저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직장 내 폭력, 사업장에서의 고객 갑질 등이 근절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이고 과거와는 비할 바 없는 풍요로움을 누리는 이 시대이지만 욕심에 사로잡혀 어린 아이만도 못한 작태가 끊이지 않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정신적 가치, 신앙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이는 신앙인에게도 참으로 많은 반성을 하게 합니다. 작금의 종교가 ‘기복신앙’에 편향되어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현세적인 복, 돈 많이 버는 것, 출세하는 것, 진학과 취직 같은 물리적인 형태의 복만을 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런 기도 지향들이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복을 주시는 분이시고 성경에서 부자를 단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한다면 문제이고 내가 얻은 재물을 이웃과 세상이 아니라 나만을 위해 쓴다면 문제가 되고 그것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된다고 항상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기도 중 주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등장하는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가장 완벽한 기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루카 11,1-4) 이 기도의 첫머리에 무엇이라 적혀있습니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되어있습니다. 주님의 기도가 가장 완벽한 기도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내 뜻만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가장 먼저 찾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허물과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있더라도 서로 보듬어주고 용서하며 화해하는 세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회가 바뀌려면 제도와 법령도 개선되고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해야 할 일이겠지요. 그러나 제도와 법령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바뀌진 않습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을 피할 법도 만들어진다는 세간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진심 어린 회심과 반성, 성찰이 없이 그 모든 법들도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대화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함께 도우려는 마음과 의식이 금번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며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게 가꾸는 공동의 노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올바른 신앙인답게 기도 안에서 나 개인의 행복과 복만이 아니라 나보다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가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길 기도하는 그런 성숙한 기도를 봉헌하면 어떨까요? 그런 지향을 갖으려 하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느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복을 주실 거라 확신하며 저 또한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루카 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