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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와 함께하는 미사 강론 (2018. 6.14)
    • 등록일 2018-06-15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98
  • 2018. 6. 14. 연중 제 10주간 목요일 콜트콜택 미사 강론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위원장)


    찬미예수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하여 남긴 복음사가 가운데 마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복음서를 작성하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냥 예수님의 연설과 기적 등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매우 짜임새 있게 편집해 놓았습니다. 

    이러한 전체적인 편집의 흔적 안에서 
    마태오복음서 5장부터 7장까지는 특별히 예수님의 설교 내용을 묶어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부분은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예수님께서 옛 구약의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신 연설을 모아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고, 여러분은 그것을 들어 알고 있지만
    그 율법의 참된 내용은 이러이러한 의미입니다.. 라고 율법을 풀이하시는 내용입니다. 

    “너희는 이러이러한 율법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동일한 구조를 반복하며 
    살인해서는 안된다.
    간음해서는 안된다.
    아내를 버리는 자는 이혼장을 써주어라.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라는 대표적인 율법을 더욱 깊이 풀이하십니다. 

    방금 우리가 들은 오늘 복음은 이 가운데 제일 처음 등장하는 
    “살인해서는 안된다.”라는 율법에 대한 해석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살인이라는 개념을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신체에 위협을 가해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율법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중에서 아무도 스스로 살인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당시 사람들에게도 율법이 말하는 살인은 그저 형법의 살인죄와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에 종교적 의미를 담아 
    단순히 흉기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끔직한 범죄만을 살인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 타인의 인격을 손상하는 거친 말로 표현되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같다고 하십니다.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 혹은 멍청이라고 비난하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살인해서는 안된다.”라는 개념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많은 갈등에서 사람을 미워하고 배척하지 말 것이며
    “화해”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는 율법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는 행위가 아무리 거룩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그 전에 다른 누군가와 갈등을 빚고 있다면 예물을 바치는 행위를 중단하고
    먼저 화해하고 돌아올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루 안에서도 거친 말을 하게 되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매우 높은 수준의 계명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보, 멍청이라는 말도 하지 말고, 
    타인의 존재를 깍아 내리지도 부정하지도 말라는 것을살인과 같은 차원으로 생각하라니 
    덜컥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사람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갈등이 일어나면 반드시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이러한 화해를 이야기하면서 
    단순히 갈등을 묻어 버리는 차원의 것과 혼동하기도 합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문제이니 그만 잊어버리라느니..  이제 그만 용서하고 끝내라느니. 
    혹은 깨끗이 씻고 다시 시작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화해와 혼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해는 분명 정당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참된 화해는 일정한 과정을 거친 결과물입니다. 

    우선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여기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등의 
    객관적 사실이 온전히 복원되어야 합니다. 

    이 밝혀진 진실 위에서 두 번째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가해자의 사과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해 일어난 갈등에 따라 피해를 입고 손해가 난 사람에게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용기내어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발생한 피해를 돌이킬 수 있는 방식을 통해 복원해주어야 합니다. 

    많은 부분 피해는 동일하게 복원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거나,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보상은 동일한 복원은 아닐지라도 피해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최대한 이루어져야 합니다.


    네 번째는 피해자의 용서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자비의 마음입니다. 
    너그럽게 대하는 마음, 상대를 다시 받아들여주는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해주는 것 입니다. 

    진실-사과-보상-용서

    이 네 가지의 단계가 온전히 진행되었을 때, 
    그 때를 들어 우리는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단순히 잊어버리기를 강요하거나 
    용서하기만을 강요한다고 해서는 참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콜트콜택 문제를 보며 
    이제 그만 화해하라고 이야기 한다 합니다. 
    다 잊고 새로 출발하라고 이야기 한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왜곡된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의 사과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보상도 없고 이들의 삶이 복원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용서도 할 수 없는 것이고 당연히 화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에서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는 것보다도 
    갈등을 빚고 있는 사람과 화해하는 것이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콜트콜택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책임을 다 해야 하는 사람의 사과가 그 출발입니다. 

    학생들에게 기타를 선물하고 자선을 베푸는 일이 먼저가 아니라
    탐욕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불의한 일을 일으킨 것에 대해 속죄하는 것이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살 수 있고,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곳 천막 앞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람의 회심을 위해 기도합니다. 

    시대의 탐욕에 물들어 사람과 생명을 거스른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 참회와 회심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용서하려고 준비된 마음이 있습니다. 
    화해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루빨리 콜트콜택 해고 노동자와 이 땅의 많은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이 끝날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가 문제의 해결은 아니지만, 
    우리의 기도는 분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때를 앞당겨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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