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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글]올바른 인식과 구체적 실천, 변화는 가능합니다
    • 등록일 2019-05-0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70
  •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 후원회보 [나눔공동체] 277호 (발행일:2019. 5. 1.) 기고>

     

    올바른 인식과 구체적 실천, 변화는 가능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박효정 세라피나 활동가(기획팀장)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이는 어떤 낱말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몇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의 원천이고 적어도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한 조건이기 때문에 명예로운 것이며 원칙적으로 빈곤을 막는 효과적인 도구’ (간추린 사회교리 257항), ‘창조 행위뿐 아니라 구원 행위에도 참여하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차원’ (같은 책 263항), ‘하나의 의무, 말하자면 인간의 임무’ (같은 책 273항), ‘처음부터 창조의 신비가 작용’ (노동하는 인간 12항),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에 속하며, 성장과 인간 발전과 개인적 성취의 길’ (찬미받으소서 128항)

     

    네, 정답은 “노동”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한 노동. 사전적 정의를 가만히 보면 노동하는 당사자가 능동적인 존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함’이란 뜻을 가진 ‘근로’라는 말보다 훨씬 힘찹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더 나아가 노동을 하느님 창조 사업의 협력행위로 보며, 노동자에게 사명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확실히, 대단히 멋지고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 속 노동‧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동사목위원회는 노동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자 여러 교육 사업을 벌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권리교육, ‘숨’입니다. 본당 주일학교 청소년들과 4주간 만나며 노동의 본래 뜻과 가치, 인간 존엄성, 노동자의 권리, 임금 및 근로계약서에 대해 나눕니다. ‘숨’ 교육은 우리 청소년들이 노동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매번 강의에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노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엄청 힘듦, 정식 사원이 아닌 인턴, 막노동,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일, 알바하는 사람, 비정규직, 육체적으로 더 힘든 일.’ 청소년이 노동의 세계에 진입도 하기 전에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노동과 노동자를 그렇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콜텍이라는 기타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 업계에서 세계 3위 안에 드는 회사인데, 2007년 4월 별안간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습니다. 출근길에 느닷없이 당한 부당해고 앞에서 그냥 눈감지 않고 12년을 길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지난 4월 그분들과 함께하는 미사 끝 무렵, 한 달 넘게 단식투쟁 중인 노동자에게 한 말씀 청했는데 그분의 발언은 놀라웠습니다. “회사가 우리한테 이런 저런 나쁜 짓을 해도 기타는 한국 기타가 최고다.” 도대체 사장이 제정신이라면 자기 회사 제품에 이런 자부심을 가진 노동자를 어떻게 내칠 수 있는가 싶습니다. 이런 자부심으로 뭉쳐진 그의 노동은 그 어떤 이윤의 논리도 파고들 수 없는 것입니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메시지가 두 개 왔습니다. 20대 청년 두 명에게서 왔는데, 공교롭게도 둘 모두 입사 지원한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거의 1년째입니다.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청년들. 이들이 가지는 실의와 무력감을 가늠조차 못하겠습니다. 적정 노동시간과 적정 임금이 보장된 괜찮은 일자리 갖기 너무 어려운 세상에서 장기간 고통 받고 있는 청년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무너집니다.

     

    장년 노동자는 해고되었고, 청년 노동자는 아예 애초부터 품위 있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는 최저임금만 주고, 1-2시간 추가노동을 아무렇지 않게 지시하고, 불의에 대항하면 해고 불안과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립니다. 모든 세대 노동자들이 가혹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제공한 노동을 통해 창출된 부는 이제껏 누구를 풍요롭게 한 것일까요?

     

    노동과 노동 문제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갖지 못한 데 따르는 잘못된 실천은 많은 노동자를 아프게 합니다. 비뚤어진 우월감과 열등감,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 갑질, 이윤극대화를 위해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는 행태, 안정적인 삶을 계획하기 힘든 비정규 노동, 사람의 생명보다 비용절감이 우선되어 안전장치 없이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일. 지면상 모두 나열할 수 없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목격하고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견고해지고 고착화된 노동 문제들, 사회 부조리와 구조적 모순이 과연 일부 사람들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인가 의구심과 회의감과 무력감이 크게 크게 차오릅니다. 숨도 턱 막힙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의 역할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희망이 없다고 확신할 때 절망하고 주저앉습니다. 학습된 무력감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교회의 역할은 단 하나, 끊임없이 약자에 대한 사랑과 연대를 실천하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기 방법이 있다’고 격려하며 쉬지 않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교회입니까? 우리 모든 신앙인이 교회 그 자체입니다.

     

    변할 것 같지 않아도 변화는 옵니다. 노동자들은 그 변화를 이미 만들어 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5월 1일 기념하는 노동절이 그 증거입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벌인 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이 있었고, 그것을 이어받아 프랑스에서 뭉친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존엄과 권리를 외쳤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1일 8시간 노동시간 법제화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노동법 준수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와 수많은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가 있었습니다. 노동절은 129회를 맞는 2019년 오늘까지도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기억하며 기념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를 기념하고 희망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변화를 맛 본 우리이기에,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자는 연대하여 불의에 저항하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구체적 연대의 실천은 어렵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고, 모든 노동을 존중하고, 내 이웃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갖고, 노동자의 어려움에 경청하고 공감하고, 노동 문제 개선 활동에 동참하거나 지지를 보내는 일 등입니다.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행하다보면 변화는 옵니다. 그것을 믿고 연대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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