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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세이 2018-06]육화의 신비와 삶의 현장
    • 등록일 2018-12-2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73
  • 육화의 신비와 삶의 현장

     

    노동사목 부위원장 이주형 요한 신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성자를 이 지상에 보내셨다고 한다. 그것을 강생(降生)의 신비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내려오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분이 비천한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화려하게 보이는 예수 탄생의 흔적은 고궁, 고관대작이 아니라 마구간, 구유, 목동들로 채워져 있다. 그 당시에도 마구간과 구유는 사람이 기거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더욱이 야간에 양을 치는 목동은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의 노동자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들과 장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쏟아진다. 정치가, 법조인, 경영인과 같은 다소 높은 꿈을 말하는 학생도 있고, 현실적으로 소박한 가게의 사장이 되고 싶다거나,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자신의 재능을 키워서 일하겠다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데 노동자는 되기 싫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노동자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막노동꾼, 힘든 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한다. 사실 이 시대의 자화상이 그러하다. 모두들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죄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일을 한다. 어림잡아도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은 종교를 가지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종교인들은 다를까? 필자로서 남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성찰해보건대 필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제로서 성직자의 소임을 살아가지만 가난하고 배고프고 그래서 비천한 처지를 산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참으로 부끄럽다. 그처럼 낮아진다는 것은 어려운 것인가 보다. 그러나 점점 그런 의식에 사로잡혀서 스스로가 타성에 젖어가는 것이 더 무섭고 두렵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피하는 내가 어떻게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강생 하신 그리스도의 육화 신비를 체험한단 말인가!

    예로부터 종교의 극의(極意)는 그 가장 낮음에 진리와 생명이 있다고 가르친다. 죽음과 비천함이라는 실존적 낮아짐을 체험한 이들만이 누리는 부활의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음을 산다는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가를 따지기 이전에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의식과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는 믿음과 내 희망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믿고, 희망할 것인가? 이 성탄 시기,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본받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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