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관안내
  • 오시는길
  • 후원안내
  • 문의하기
노동이슈

판단

  • home
  • 노동이슈
  • 판단

  •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 강론
    • 등록일 2018-09-2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2
  •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 강론

     

    정수용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긴 시간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추석 연휴를 마치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온 오늘입니다. 추석 연휴도 잘 보내셨고, 다시 시작한 일상의 하루도 잘 보내셨는지요? 예전부터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표현처럼 1년 중 날씨도 가장 좋고, 추수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 풍요의 계절이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의 삶을 사는 우리가 수확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계절은 분명 여유와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높은 하늘과 상쾌한 바람, 그리고 매장 진열대를 채운 햇과일들은 분명 이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로움 속에서도 오늘 우리는 이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약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며 오늘의 미사를 봉헌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 제 39차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는 우리사회 법과 제도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기억합니다.

     

    한 가지 질문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노동자와 사장 사이의 관계를 떠올려 본다면, 누가 사장이 되는 것일까요?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월급을 주는 사람이 사장일까요? 아니면 일을 시키는 사람이 사장일까요? 물론 이 둘이 일치하기에, 일을 시키는 사람이 월급을 준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산업 형태가 다양해지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전통적인 고용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많이 발생하기에 혼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복잡해지는 고용관계 속에서 일을 해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배달하면 그 음식을 배달해주는 노동자는 중국집 소속이었고, 당연히 중국집 사장님이 일도 시키고 월급도 주는 진짜 사장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모바일 기계로 음식을 주문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그 정보가 주문업체 전산망을 통해 해당 음식점에 접수되고, 음식점은 배달전문 업체에 배달을 맡깁니다. 배달전문 업체는 배달 정보를 모바일 기계에 띄우고, 이를 보고 가장 가까운 곳의 배달원이 일감을 클릭합니다. 그리고 음식점을 방문해 음식을 수령한 후 기계에 입력된 고객정보에 따라 배달을 합니다.

     

    이러한 모바일 플랫폼을 이용한 노동 안에서 이 배달원에게 일을 시킨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바일 기계를 보고 일감을 수락했기에 일을 시킨 사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는 자신이 클릭한 숫자에 따라 건당 얼마씩 수입으로 가져가기에 고객이 주는 것도 아니고, 주문업체가 주는 것도 아니며, 음식점 사장님도 그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분명 노동은 존재하지만, 그 사이 중간에 사람은 사라지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산망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용 관계를 플랫폼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은 단순히 음식물 배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서비스 산업 전반으로 확대 되고 있습니다. 대리운전이나 콜택시 등은 이미 보편화 되었고, 가사도우미나 심부름업체, 세탁물 수거와 배달, 심지어는 법률 서비스까지도 플랫폼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플랫폼 노동 안에서 고용주가 따로 없기에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퇴직금이나 고용보험 등이 없기에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고용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실직 후 사회적 안정장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배달 중 다치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보험이 가입되어 있지 않기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로 구분되는 특수고용 형태이기에 실제로는 일감을 받아 일하는 처지이지만, 이들을 고용한 사장이 없어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 말고도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래미콘 기사 등과 같이 실질적으로는 고용관계에 있지만, 사업자등록을 한 자영업자로 분류되기에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우리나라에서만 200만명이 넘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이들 역시도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합니다.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애매한 신분에서 불안한 고용, 낮은 임금, 상대적으로 위험한 사업장에서 오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서비스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전과 달리 안정적인 고용과 높은 연봉, 그리고 다양한 복지 혜택이 보장되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같은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대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고용관계가 늘어나면서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하루 8시간 이상, 주 40시간 이상을 성실히 일하지만 삶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잠을 줄여가며 땀흘려 성실히 일함에도 불구하고 늘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빠듯한 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수많은 약자들과 함께, 우리는 오늘을 살았습니다.

     

    사실 이러한 현실을 한 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몇 사람의 노력으로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노동이 가치 있고 소중하듯, 아르바이트 노동,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 노동 등으로 누군가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한 노동자들의 그것 역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우리사회 노동약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기억하는 것은, 분명 공동선을 실현하는데 소중한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사회 약자들의 모습을 인식하고 기억하고 변화를 위해 힘을 모을 때, 그 선한 의지가 모여 모두의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 빈부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그저 흥밋거리로 바라봅니다. 신기한 일을 일으키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가장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가난한 약자들을 마치 헤로데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이야기, 그저 안타까운 사연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발전을 이룰 수 있기 위해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할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 약자들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고용관계에서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나의 노동을 소중히 여기듯, 내가 누리는 재화와 서비스를 담당하는 모든 노동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 첨부파일
    사회적약자미사 012.jpg
    사회적약자미사 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