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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와 함께하는 미사 강론
    • 등록일 2018-09-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1
  • 시대의 표징

     

    2018.9.13. 콜트콜텍 미사 강론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부위원장

    이주형 세례자 요한

     

    † 찬미예수님

    오늘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 미사를 봉헌합니다. 무더웠던 여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날씨도 선선하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도 제법 불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하늘 아래 이 세상에는 갖가지 많은 희로애락이 가득한데 세월은 참으로 무심히 흐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 어려움에 동참하고자 이렇게 모였습니다. 오늘 이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가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이끄심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최근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인 그 뜨거운 사태이자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바로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부동산 문제입니다. 흔히 이야기합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파트 값이 몇 억이 올랐다더라!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직장에 다니며 가정을 이루는 분들이 몇 년을 아껴서 저축을 하면 그 몇 억을 모을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겁니다. 아니, 어떤 분들에게는 몇십 년을 모아도 몇 억은 못 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으로 불과 하룻밤 만에 몇 억을 번다고 하니,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거기에 갈 수밖에요.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태가 사회 전체로 하여금 불안감과 긴장감을 높이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가중시킨다는 것입니다.

     

    토마 피케티는 자신의 저서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서 1980년 이후 세계 하위 50% 소득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상위 1%와 하위 50%의 소득 격차는 1980년 27배에서 81배까지 벌어졌다. 저자들은 지금과 같은 불평등 추세가 계속된다면 세계 부에서 최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은 현재 20%에서 2050년 24%까지 늘어나는 반면 하위 50% 몫은 10%에서 8%로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2018.9.9. 매일 경제 이코노미. 강승태 기자.>

     

                                           

    그래프) 2017.2.5. 한국일보 정준호 기자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어느 정도 감수해하고,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평등의 문제가 사회 안에서 구조화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고, 그러다보니 이로 인한 우리 사회의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사회적 갈등도 우려스러운 수준입니다. 

         

                               

    위의 그림은 자본주의 현대판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를 다룬 만화입니다. 3년간 열심히 일한 개미와 부모님이 주신 집의 매매값이 올라 3억을 번 배짱이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 성장률과 계층 이동이 둔화되고 고용환경이 경색되면서 결과적으로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 기간제, 계약직과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는 급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고 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해지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에 모든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몇십 년을 모아도 내 집 마련하기가 어려운 평범한 가정들의 현실,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스펙을 쌓고 아무리 애를 써도 9급 공무원 자리도 하늘의 별따기인 청년들의 현실, 대기업에 들어가도 정년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노후마저 불투명한 지금 세상 이러한 처지에서 부동산은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위한 가장 최적의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부동산 값이 올라서 모두가 전전긍긍하는 사이에 나 역시 재물과 편안하기만 한 삶을 동경하고, 더 나아가 그것들에만 애착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하느님을 잊고 세상의 재물과 현세적 복락에만 마음을 두고 욕심과 탐욕만 가득 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세상이 그러니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난 편하게 살아야지!” 우리의 마음속 이야기는 아닌가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야기하십니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이 다 그렇습니다. 내가 살아야 남도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현실 속에서 현실을 우선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도 어리석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재물과 세상 행복이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빵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을 항상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함을 강조드리는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

     

    노동이 갖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는 노동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행위이자, 인간의 품위와 존엄함을 드리는 성화의 수단이라고 이야기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67항). 그리고 응당 사람은 누구나 노동을 통해 영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인간다운 건강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그런 건강한 노동을 통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과 부당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거리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웃도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이 그러합니다. 그들의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함께 연대해야 하며 추상적인 도움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으로 그분들의 어려움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무엇보다도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나 역시 탐욕과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대적 현실에 휩쓸리지 않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참된 회심이 모여야 재물과 이윤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부분도 바뀔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광야로 인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몸소 부르신 이들을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고향인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던 아브라함이나(창세기 11,31),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 체류했던 이스라엘 민족(탈출 13,18), 예언자 엘리야와(1열왕 19,35) 아라비아 사막에 체류했던 사도 바오로에 이르기까지(갈라 1,17), 부르심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위해 하느님께 순명하며 생존이 불가능한 광야로 인도되었습니다.

    성서적 의미에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표현되는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금권과 물질문명을 누리며 편리함만을 찾는 이 시대에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뭔가를 버려야 하고 뭔가 불편함을 찾아야 한다는 영적인 방향성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도시 문명의 화려함 속에서 쓸쓸히 서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분들의 농성장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도 모를 시대의 잘못된 방향을 경고하는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즉, 잘못되고 비뚤어진 노동 현실을 책망하는 시대를 향한 교회의 사회교리적 상징이요 어려운 이웃의 처지에 함께할 것을 권고하고, 돈과 부유함만을 찾지 말고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을 찾으라는 이웃 사랑을 위한 상징이며 하느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인간임을 깨닫고 하느님께 믿음을 두라는 영적인 회심의 상징입니다.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1마카베오 2,29)

     

    기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을 찾는 삶이어야 하고, 현세적 가치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라는 하늘나라의 보화를 찾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마태 6,20). 오늘 여러분들의 기도가 콜트콜텍 노동자분들에게는 형제적 위로와 사랑을 주는 기도가 되고,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회심하며 세상 재화 행복만이 아닌 하늘나라의 행복을 찾는 기도이길 희망합니다. 레위기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너희는 동족끼리 서로 억울하게 하지 마라.

    너희는 하느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의 하느님이다.

    (레위 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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