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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cial Doctrine 2018-01]인격적 행위로서 노동
    • 등록일 2018-09-1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2
  • 인격적 행위로서 노동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이주형 요한 신부

     

    □ “너 그것도 못하냐?”

     

    친구들과 지내면서 어렸을 때 한 번쯤 들었던 말, “야, 넌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가 아닐까요? 저마다의 재능과 관심이 다를진대 어떤 친구들은 짓궂게도 이런 이야기로 핀잔을 주고, 또 그런 이야기를 들은 당사자는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런데 걱정입니다. 이런 일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이 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이 직장 내에서 부당한 일들, 상처받는 일들을 당했다고 하소연합니다. ‘업무능력이 떨어진다’, ‘근무태도가 좋지 못하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성과가 미미하다’. 그리고 더 심해져서 이것이 나중에는 갑과 을의 싸움이 되고, 사용자의 일방적 갑질이 됩니다.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태만한 근무태도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근무자들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하지 않은 사람 먹지도 말라”(2테살 3,10)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노동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논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논의 대상은 사람과 노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논의하고 싶은 것은 첫째 우리는 과연 노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둘째로 노동과 인격을 어떻게 관련지어 생각하는지입니다.

     

     

    □ 노동은 그 자체로 인격적 행위

     

    가톨릭 교회에서는 노동의 객관적 차원과 주관적 차원을 이야기합니다. 노동에 대한 부수적인 차원으로서 환경적인 측면과 기술, 문화 등은 객관적 차원인데 주관적인 것은 노동 주체의 인간 존엄과 인격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 존엄이야말로 노동의 궁극적 토대이며 노동은 그 자체로 “인격적 행위”(actus personae)인 것입니다(간추린 사회 교리 270항). 따라서 직업으로 인해 그 사람이 차별될 수 없으며, 노동은 그것이 무엇이라 해도 고유하고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노동을 인격적 행위로 이해할 때 노동은 상호 상생과 사회발전의 기틀이 됩니다.

    노동 문제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당연하지 않을까요? 노동은 더 깊고 심오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를 함축하며 한 인간이 아닌 사회적 가치의 문제이고 상호 간 협치와 대화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시대의 문화와 풍속은 노동의 문제를 효율성, 생산성, 성과와 비용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뒷전으로 밀립니다. 어린 시절 “너 그것밖에 못해?”라는 철없는 핀잔이 노동환경에서는 그 사람의 고유한 인격과 가치를 무시하며 업무와 성과, 비용과 효율로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됩니다.

     

     

    □ 노동의 사회적 차원

     

    노동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함축한 단어입니다. 생존과 자기발전, 노력과 보상 성취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노동이 갖는 사회적 차원의 의미입니다. 노동은 단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의 문제들도 가족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가 함께 어울려서 협력하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사회를 지탱하고 끌어가고 성장시키는 도구인 노동 역시 사회적 차원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노동에 대한 가치 부여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노동은 중요하고 어떤 노동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입니다. 어떤 일은 귀한데 어떤 일은 천하다는 식으로 가치의 차별이 만연합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전문적인 직종들도 있고, 그냥 단순 육체노동과 같이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직업 간의 귀천과 차별의 척도는 아닙니다.

    노동이 갖는 의미 중 사회적 차원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노동 문제를 인격의 문제로 인식하여 모든 일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공감이 있을 때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동 환경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이것을 개별 사업장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노동자와 사용자가 협력하고 대화해야 하는 문제로 볼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 쌍용차 사태, 시대의 아픔이자 시대의 징표.

     

    지난 9월 13일 금요일 10년을 이어왔던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사태와 인권 유린 참사”가 노사 간의 복직 합의를 바탕으로 해결의 가닥을 잡았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 동안 당사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일을 당했고 지금도 그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이 참담했던 쌍용차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아왔습니다. 이 쌍용차 사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국가 공권력의 부당한 폭력과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우리 사회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을 고스란히 담은 우리 시대의 상처와 아픔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정리해고 사태, 비정규직 일자리의 지속적 증가가 사람을 피폐하게 하고 사회를 멍들게 한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기업이 먼저이고 기업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며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물론 양자의 입장이 대화를 통해 잘 조율되고 서로가 공감 어린 절충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고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양자 간 가치 기준은 바로 “인간 존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져야 합니다!

    10년을 끌어오며 많은 분들이 처절하리만치 고통을 겪어온 쌍용차 사태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을, 노동이 아니라 효율을, 인권이 아니라 돈을 쫓아온 우리 시대의 참혹하고 잔인했던 역사이자 탐욕과 욕심에 눈이 멀고 귀가 닫혔던 우리 시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자 우리의 진정한 회심을 촉구하는 시대적 징표였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해결이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노동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시각의 변화 필요

     

    쌍용차 문제가 복직 합의를 통해 일단락이 되었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노동 환경 안에서의 문제들은 매우 많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계속해서 강조했던 노동에 대한 가치의 회복 문제. 노동을 인격적 행위로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개선 문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가의 숙제 등입니다.

    노동은 그 자체로 인격적 행위이기에 존중받아야 할 것이고 우리가 자본주의적 척도보다 그러한 인간 존엄을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훨씬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의 결문에서 가톨릭 사회교리의 목적은 “세상과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의 문명 만드는데 참여하는 것”이라 밝히며 하느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이 바로 우리들의 노력과 참여로 사랑의 문화가 들어설 것이라 제언합니다.

    이 사랑의 문화를 건설함에 있어서 우리 모두의 회심이 요청됩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려는 욕심을 버리고 돕고 나누며, 함께하고 연대하며 자연과 환경도 배려하는 그런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그것을 찬미받으소서에서 생태적 회심이라 일컬어 우리 모두에게 제안하셨으며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에서도 우리 인간 사회에 필요한 가치와 덕목은 사랑임을 강조하십니다.

    노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매일 해나가는 우리의 노동이 어떻게 존중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가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며 돈과 업무보다 사람이 귀하다는 생각을 할 때 가능합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양보하고 용서하는 삶을 실천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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