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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등부 주보 하늘마음]“노동이란 인간을 위한 활동”
    • 등록일 2018-01-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70
  • “노동이란 인간을 위한 활동”

     

    이주형 세례자요한 신부

     

    집 근처 빵집에서 2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 요한이는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어머니가 일을 하시다가 다리를 다치셔서 요한이가 학교 공부도 하고 어린 동생들도 챙겨야 하고 어머니 병간호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일을 못 나가셔서 장남인 요한이는 가족의 생활비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빵집 사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주말 근무 시간을 늘려 월급을 더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한이가 틈틈이 가게와 집을 오가며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챙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득이 가게를 비울 때도 있어서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빵집을 운영하는 베드로 형제님도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작년보다 가게의 매상이 많이 줄었습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최저임금도 시간당 7530원으로 인상되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줄 급여도 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열심히 해주어서 다행입니다. 착하고 예의 바른 학생인데 내성적이고 말이 없어서 걱정되지만 그래도 가게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습니다.

    토요일 오후 빵집에 모처럼 손님들이 붐볐습니다. 향긋한 빵 냄새가 풍기는 가게에는 활력이 넘쳤습니다. 베드로 형제님도 모처럼 바쁘게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일손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르바이트 학생 요한이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일손은 부족한 데다 아르바이트생 요한이가 약속 시간을 지키자 않아 베드로 형제님은 화가 납니다. ‘혹시, 무단으로 안 나오려나?’, ‘시급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5시 정도가 되어서 가게가 다소 한산해졌습니다. 이제는 더 판매할 빵이 없을 지경입니다. 이제 어수선해진 가게 내부를 정리 정돈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때 요한이가 들어옵니다.

    베드로 형제님이 말을 꺼냈습니다. “좀 늦었네. 집에 무슨 일 있었어?” 요한이는 말을 못 합니다. 베드로 형제님이 다시 말을 건넵니다. “일단 가게부터 같이 치우자.” 사장님과 요한이는 가게를 정리합니다. 가게를 정리하면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사장님은 요한이가 막내 동생의 유치원 행사에 다녀온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시고 어머니가 아프셔서 동생의 유치원 행사에 요한이가 다녀온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가 미쳐 자신에게 이야기를 미리 못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럴만합니다. 요한이는 아직 고1입니다. 자신의 아들 뻘인 요한이는 부모님의 품에서 응석을 부릴 학생입니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지금 소년 가장처럼 힘겹게 사는 것입니다. 사장님도 불현듯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일 나가시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어린 자신을 큰형이 돌보아주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베드로 형제님이 요한이의 어깨를 툭 치며 이야기합니다. “이놈아 동생 유치원 행사에 갈 거면 미리 얘기 좀 해줘라. 걱정했잖냐.”, 요한이가 대답합니다. “죄송해요, 대신 오늘 시급은 안 주셔도 돼요.” 베드로 형제님이 대답합니다. “누가 너더러 시급 신경 쓰래? 잘했다. 동생 유치원 행사인데 당연히 네가 가야지. 잘했어. 허허~~.” 요한이는 아무 말도 못 합니다. 베드로 형제님이 이야기합니다. “너 힘들게 사는 거 내가 다 안다. 그래도 너 얼굴 피고 열심히 해야 한다, 알았지? 앞으로 더 열심히 해!!” 요한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베드로 형제님은 웃습니다.

    「간추린 가톨릭 사회교리」 중 인간 노동의 가르침 중에 노동의 주관적 차원과 객관적 차원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270항). 노동의 객관적 차원이란 노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자원과 도구, 기술, 방법과 기술(skill)에 관한 것입니다. 주관적 차원이란 그 노동을 하는 주체인 인간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공학 기술이 발전을 해서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의 성과와 효율성이 높아졌다면 이는 노동의 객관적 차원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전된 컴퓨터 공학을 통해 일을 하는 인간이 자신의 일을 통해 보람과 기쁨을 얻는 것, 자신이 하는 일에 남다른 관심과 책임을 갖는 것 또는 그 자신이 일터에서 하나의 존엄한 인격체로써 존중을 받는 것 등은 노동의 주관적 차원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노동에 대한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차원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노동의 생산성 제고와 효율성 향상을 위해 도구적이고 방법적인 객관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 그의 자발적인 책임감과 그가 느끼는 보람과 기쁨에 대한 존중도 노동성 향상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아르바이트생 요한이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집안일 때문에 부득이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베드로 사장님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물어 시급을 주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베드로 사장님은 노동의 주관적 차원을 더 깊이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비록 자신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직 학생인 요한이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오히려 그가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준 것입니다. 그럼 요한이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사장님께 고맙고 감사해서 자신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 그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믿어준 사장님의 따스함이 평생을 간직할 고마움이 되지 않을까요?

    「간추린 가톨릭 사회교리」는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노동의 목적은 언제나 인간이다.”(272항) 이 가르침의 의미는 바로 인간이 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일보다 인간이 소중함에 대한 강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노동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노동을 대함에 있어 ‘믿음, 신뢰, 배려, 존중’보다 ‘비용, 일의 양, 일하는 시간, 일의 성과’ 만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노동은 우리 모두를 소모품으로 전락시킬 뿐입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며 그의 인격과 가치를 존중해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어 서로가 성장해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노동의 주관적 가치, 사람의 사람다움, 인간의 인격을 소중히 하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함께 배려하고 이해해주며 그런 가운데 감사하고 보답하는 사회,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올바른 사회는 바로 그러한 세상이 아닐까요?

    - 하늘마음 2018.1.7(주님공현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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