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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레지오 마리애]10월 "최저임금, 얼마여야 할까요?"
    • 등록일 2017-10-10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04
  • [201710]복음으로 세상 보기

    “최저임금, 얼마여야 할까요?”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넌센스 퀴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누구일까요?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지왕’이라고 답하는데 안타깝게도 정답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바로 ‘최저임금’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최저임금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갖는 이슈가 되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최저임금이 너무 낮은 수준이기에 큰 폭으로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게나 회사가 늘어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분명 동일한 사안인데 양쪽의 주장이 정반대이기에 헷갈려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으로 세상보기’에서는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복음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최저임금제도가 언제 생겼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 중에서도 2000년대 초반 무렵 IMF 구제 금융 사태 이후 어려워진 경제구조 하에서 시작된 것으로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재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1986년 12월31일 최초로 법률이 제정되었고,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새롭게 바뀐 헌법, 제32조 1항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라는 표현을 담아 1988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최저임금 보장으로 생활안정과 국민경제 발전 꾀해


     최저임금법의 목적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최저임금법 제1조)고 정의합니다. 말 그대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 전체적으로 나라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근로자의 생활안정’이란 말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지 않을 정도의 의식주 수준만 되어도 생활 안정이라 생각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은 요즘의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합니다. 실재로 거의 매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주체 가운데 하나인 재계를 대표하는 분들은 더 올리지 말고 동결하자는 주장을 들고 나옵니다. 반대로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안정된 생활이라는 것이 목숨을 부지할 수준의 의식주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플 때 병원에 가야하고, 자녀들의 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하고, 문화생활도 유지할 수 있을 때 생존이 아닌 존엄이 지켜진다는 것인데, 지금의 수준은 생존하기도 힘든 정도이기에 큰 폭으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정반대의 입장에서 사실 매년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단 1원도 올릴 수 없다는 사람과 당장 지금 수준의 50% 정도를 올려 1만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최저임금은 노동계 대표 9인, 재계 대표 9인, 공익위원 9인 등 총 27명의 투표를 통해 정하는데 노동계와 재계의 입장 차이에서 공익 위원의 입장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익 위원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의 입김이 많이 반영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최근 10년 동안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평균적으로 약 5.6% 정도씩 인상되었고 평균금액으로는 매년 약 250원 정도씩 오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 7월에 2018년 최저임금을 인상률 16.4%, 인상액 1060원 수준의 시급 7530원으로 정했습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소득 수준을 늘려 경기를 살리고 노동자의 최저 수준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최저임금이 오른 후 사회적 반응이 이상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당장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주인 영세 소규모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 노동자 사이의 갈등으로 이 문제가 붉어진 것입니다.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써야 하는데,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만큼 자신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이는 자영업자 뿐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분들이 대표적으로 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영업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인건비 뿐 일까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임대료, 프랜차이즈 본사에 내야하는 로열티, 홍보비, 재료비, 그리고 신용카드 수수료 등도 부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실질적으로 영세 자영업자도 아르바이트 노동자 못지않게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까지 자영업자의 수입은 자신보다 더 약한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하고, 가장 손쉽게 줄일 수 있는 인건비 동결을 통해 유지해 온 것입니다.

     

    최저임금이 불평등 해소와 인간 존엄성을 보장해야


     최저임금 인상이 순식간에 두 약자의 싸움처럼 바뀌어 버린 것 뒤에는 그 싸움으로 이익을 얻는 강자가 있습니다. 골목상권에 진출한 대기업, 갑질을 부리던 프렌차이즈 본사, 마음대로 소득을 높여온 건물주의 탐욕은 뒤로하고, 약한 사람이 살기 위해 더 약한 사람의 임금을 올려주면 안 된다는 논리로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또 다른 정책과 제도가 시행되어야지, 지금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고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복음적이지도 않은 것입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노동은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것으로서, 인간의 자아실현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기업을 운영하며 투자를 결정하는 최고 책임자의 노동은 한 시간에 수백, 수천만 원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편의점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커피숍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노동은 몇 백 원도 오르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정한 업무를 수행하기까지의 노력과 비용을 보상하는 의미에서 모든 임금이 동일할 수 없습니다.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고 더 힘들고 어려운 과정에는 더 많은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임금 격차가 그렇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루 8시간씩, 주 40시간씩 부지런히 일한 사람이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임금이 과연 공정한 최저임금이라 말 할 수 있을까요?


    노동과 임금을 바라보는 눈이 경제적인 기준에만 쏠려있을 때, 우리는 정작 그 노동을 하는 인간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경제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봉사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공동선의 가치를 추구할 때 올바른 경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저임금이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임금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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