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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레지오마리애]8월호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
    • 등록일 2017-08-0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54
  • 201708]복음으로 세상보기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매년 6월 말에서 7월초에는 제가 속한 서울대교구 신학생들의 사회사목 체험이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매 방학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사제직을 준비하는데, 학부 4학년 여름방학 때면 노동사목, 빈민사목, 이주사목, 환경사목, 정의평화위원회… 등 다양한 사회사목 분야에 지원해서 약 1주일 정도 담당 신부님과 함께 생활하는 연수를 진행하게 됩니다.


    신학교와 본당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사제직을 준비하지만, 방학 기간에는 쉽게 체험할 수 없는 특수 사목에 대해서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저희 노동사목위원회에도 세 명의 신학생이 찾아왔고 여느 때처럼 다양한 체험들로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몇 해 전 찾아왔던 한 신학생이 연수를 마치며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신학생은 비교적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곧바로 신학교에 들어갔던 이였습니다. 사회문제나 제도적 모순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못한 채 특별한 고민 없이 살아왔고, 그러한 그의 눈에 비정규직과 대량해고, 저임금과 산업재해 등의 노동 문제는 강한 인상으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신학생은 노동사목위원회를 떠나며 남긴 소감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완고한 사람들,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폭력적인 사람들, 늘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와서 이야기 들어보니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솔직한 고백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아.. 세상이 생각하는 노동자, 노동조합이란 것이 이런 이미지일 수 있겠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선입견은 제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본당 보좌신부로 살다가 노동사목위원회로 발령을 받자 많은 교우 분들이 떠올린 이미지도 그와 다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님도 데모하는 사람들 찾아다니는 일을 하시나요?”라고 묻거나, 아니면 “이제 신부님도 파업하는 사람들 돕는 일을 하시게 되나 보군요.”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신부님이 이제 그런(?) 분야의 사목을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 한 표정이었습니다.

     

    왜곡된 이미지로 노조에 대한 이해 막아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여러분도 노동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면, 앞서 소개한 신학생처럼 머리띠 두르고 조끼 입으며, 파업하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르시는지요? 한 손에는 깃발을 들거나 아니면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굳은 표정의 완고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연상되지는 않으신지요? 그렇다면 정말로 노동조합은 완고하고 폭력적인 것일까요? 노동사목 역시도 매우 이념적이거나 거친 활동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물론 이는 우리의 잘못된 이미지일 뿐입니다. 사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노조에 관한 뉴스는 거의 대부분 우리의 상상 속 이미지와 동일한 경우가 많습니다. 파업을 하고 데모를 하고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머리띠를 두른 장면이 주로 등장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언론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거나 집회를 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면,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위로 교통이 얼마나 막히느니… 시민 불편이 얼마나 가중되었느니… 등만을 강조하며 시위는 나쁜 것이고 불편을 조장한다는 이미지를 더 강조 합니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노조라는 말을 들을 때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노조주의는 왜곡된 이미지일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습니다.


    사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이러한 시선이 보편적인 현상은 결코 아닙니다. 지난 2015년 9월7일, 당시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대국민 연설에서 “누군가 내 뒤를 든든히 봐주기를 바라십니까?”라고 반문한 뒤, “그렇다면 저라면 노조에 가입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전 국민에게 노조 가입을 적극 권유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달리는 미국의 대통령도 인정하고 장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시민권의 성숙과 함께 노동권의 성숙도 함께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2015년 기준 OECD 29개국 노조가입률은 평균 29.1%로 한국(10.2%)의 세배 가량 되고, 아이슬란드 83%, 핀란드 69%, 스웨덴 67%, 덴마크 67% 등 북유럽 선진국의 노조가입률은 전체 노동자의 약 2/3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사회교리는 노동조합의 근본적 역할 인정


     가톨릭 사회교리에서도 노동조합의 중요성은 강조됩니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에서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 305항은 노동조합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선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기업가들이나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들과 맞서서 그들의 정당한 권리들을 보호하려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성장해 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직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는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역할을 인정합니다.


    노동자들의 권리 인정은 복잡한 역사적 제도적 변천 과정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풀기 어려운 문제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이 때문에 노동자들 간의 참된 연대의 실천은 그 어느 때보다 적절하고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가르치는 노동조합이 단지 사회의 ‘계급’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거나 계급투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말하는 노동조합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투쟁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고,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이어야 함을 강조하며, 증오나 상대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절대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립을 즐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선입견과 편견은 노동조합이란 이념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이란 이미지를 강요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은 건강한 노사관계에 걸림돌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노동조합이 노동자 권리를 위해 필요한 사회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왜곡된 이미지로 오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식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노동조합 스스로의 노력도 분명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정된 이미지를 잠시 내려놓고 나의 선입견을 접어 둘 수 있다면, 분명 우리는 소중한 한 걸음을 내 딛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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