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90시간 노동에 졸음운전 사고 서른한살 ‘지입 화물기사’의 죽음
물류업체 운송 대신 맡는 지입차량 운송업체 기사
휴가도 없이 주 6일 근무 ‘특수고용’ 주 52시간 예외
“가혹한 배차로 인한 과로” 가족·동료, 사고 원인 지목
업체 “배차는 원청이 관여” CJ대한통운 “재발 방지”
경기 안성에 사는 화물차 기사 김모씨(31)는 지난 11일 새벽 4시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는 CJ대한통운의 하청업체인 ㄱ운송회사에서 3.5t 지입화물차 운전을 해왔다. 이천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 제 시간에 도착하려면 새벽 3시30분에는 집을 나와야 했는데 이날 30분을 더 잤다. 김씨는 자신의 3.5t 화물차를 몰고 안성의 한 2차선 도로를 10여분 달렸다. 그의 차는 새벽 4시10분쯤 중앙선을 넘어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장기 손상이 심해 오전 7시쯤 숨졌다. 수술 도중이었다.
안성경찰서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반대편 차량의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전형적인 졸음운전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씨 어머니는 무너지듯 울었다. “제가 대신 죽으라면 죽을 수 있는데…. 정말 힘들게 살았는데…. 너무 인생이 짧잖아요….” 김씨는 2006년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왔다.
김씨 가족과 동료들은 CJ대한통운의 가혹한 배차에 따른 과로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동료 지입차 기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천 CJ대한통운 물류센터 기사들은 3.5t 기준 하루 700~800박스를 운송한다. 기사가 물류센터에 쌓인 박스를 직접 분류하고 실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오전 5시쯤 출근한다. 거래처 배송시간인 오후 6시 이전 배송을 끝내지 못하면 이후에도 계속 배송해야 한다. 가족과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김씨는 주 6일을 근무했다. 평소 오전 4시30분~5시에 출근해 오후 7~9시에 퇴근했다. 김씨는 일이 익숙지 않았다고 한다. 당일 할당된 물량을 모두 배송하기 위해 동료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일주일당 약 90시간을 일했다. 김씨 어머니는 “(아들이) 퇴근하자마자 쓰러져 잠들었고 일요일엔 24시간 동안 잠만 잔 때가 많다”고 전했다.
김씨는 한 지입업체의 화물용 번호판을 빌려 지난해 7월부터 2년 계약으로 지입차량 전문 운송업체 ㄱ사의 화물차 기사로 일했다. 지입차란 원청 물류업체의 물류 운송을 대신 맡아 하는 것을 말한다. 하청인 ㄱ사는 원청 CJ대한통운에 차량과 운전기사를 공급하고 매월 일정액을 받는다. 지입차 기사는 운송업체의 화물영업용 번호판을 빌려 등록하고 매월 ‘지입료’를 납부한다.
지입차 기사는 사용자와 근로계약 대신 위탁·도급 계약을 맺고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회사에 소속돼 월급을 받지만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이들에겐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주 52시간’ 의무도, 퇴직금과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유급휴가는 연 3일이다. 만약 지입차 기사가 주중 하루 쉰다면 운송업체는 외부 차량 1~3대를 불러 대신 배송하게 하는 이른바 ‘용차비’ 명목으로 월급에서 10만~30만원을 삭감한다. 지입차 기사의 일당은 약 14만원이다. 하루 종일 일해도 ‘용차’가 발생하면 일당을 훌쩍 넘는 돈이 사라진다. 매달 운송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지입료 약 20만원도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김씨의 동료 ㄴ씨는 “김씨에게 ‘배차가 힘들지 않느냐’라고 물어봤는데 ‘모두가 힘들잖아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동료들끼리 ‘누구 하나 죽어야 바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현실이 돼 버렸다”고 했다. 다른 동료 ㄷ씨는 “현실적으로 지입차 기사는 힘들어도 그만두기 힘들다. 관례적으로 번호판에 대한 권리금 2000만~3000만원을 내는데 소유권은 없다. 일을 그만둘 때는 번호판을 반납하고 ‘알차(차량)’만 갖고 나가야 한다. 번호판에 투자한 돈이 있으니 쉽게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저희도 김씨 사고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원인이 확인되면 ㄱ사와 연계해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산업재해 인정에 대해선 유가족과 ㄱ사가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ㄱ사 관계자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가슴이 아프지만 김씨는 개인사업자다. 자신의 할당량을 소화하기 위해 일찍 출근할 수 있지만 저희는 지입차주의 출퇴근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 배차는 CJ대한통운이 담당하고 저희는 관여하지 않는다. 저는 김씨가 일한 1년 동안 한두 번 얼굴을 본 것이 전부”라고 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 출처 : 경향신문 2018. 8. 24
* 해당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240600015&code=9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