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시는길
  • 후원안내
  • 문의하기
노동이슈

관찰

  • home
  • 노동이슈
  • 관찰

  • [한겨레신문 - 노동] 10대들의 ‘알바 지옥’…“일 시킬 땐 어른, 돈 줄 땐 아이”
    • 등록일 2015-04-20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4189
  • [월요리포트] 이 아이들이 자라 노동자가 됩니다

    학교 일과가 끝날 무렵 교실엔 활기가 넘친다. 오후 6시, 재잘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윤세미(가명·16)양은 마음이 급해진다. 광주광역시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는 세미양은 3월부터 집 근처 편의점에서 평일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터까진 버스로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종례를 마치기 무섭게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나서는 세미양에게 하굣길은 곧 출근길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뒤 세미양은 과로에 독감이 겹쳐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끼니를 거르는 일은 흔하다. “저녁은 안 먹어요. 정 배가 고프면 ‘폐기’(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는 편의점 식품)로 때우고요.” 하루 걸러 하루, 퇴근시간인 밤 11시를 넘겨 새벽까지 일한다. 야근수당은커녕 초과근무수당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일하며 그가 받는 돈은 시간당 4000원이다.


    아이돌스타 ‘혜리’가 등장하는 알바 광고를 보기 전에도 세미양은 올해 최저임금(시급 5580원)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다. 최저임금보다 한참 낮은 시급 때문에 손해본 돈이 한달에 19만원이나 된다는 것도 이미 계산해봤다. 최저임금, 야간노동, 근로계약서. 이런 것들에 관해 세미양한테 알려준 어른은 없다. 일을 하는 친구들끼리 알음알음 나눈 정보다. 권리를 지켜준 어른도 드물다. “친구들 중에도 최저임금만큼 받아본 애들은 없대요. 광고가 나온다고 (권리까지) 지켜주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미양처럼 정보 없이 밑바닥 노동에 뛰어드는 청소년이 해마다 늘고 있다. 근로계약도 맺지 못한 채 5인 미만 영세사업장으로 유입되는 청소년 노동자의 수는 통계조차 낼 수 없다. 표본조사로 그 비율을 짐작할 뿐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4년 전국 중3~고3 학생 40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25.1%다. 2013년(22.8%)보다 2.3%포인트 증가했다. 학생 4명에 1명꼴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셈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노동 사슬’ 밑바닥의 10대들한테 주어지는 일은 ‘지옥 알바’다. 저임금, 야간노동, 높은 노동강도가 3중으로 겹친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청소년의 야간노동을 금지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청소년 10명 중 1명(12.3%)은 야간근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지역 주유소에서 일하는 정현수(가명·17)군은 지난해 월미도 유원지의 한 식당에서 일했다. 근로계약서도 썼고 시급도 최저임금보다 높이 쳐줘 만족스러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밤 10시 퇴근을 약속했지만 성수기의 유원지에선 자정 무렵까지 가게를 지키기 일쑤였다. 나중에야 현수군은 자신이 야근수당과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받아야 할 수당을 돌려달라는 현수군한테 사장은 “노동청에 신고할 테면 해보라”고 소리쳤다. 5개월을 근속했지만 결국 수당 얘길 꺼내고 얼마 못 가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 당시는 제가 많이 주눅이 들었어요. 신고를 할까 하다가 사장님과 정이 많이 들어서 그냥 화해하고 마무리지었어요.” 사업주의 부당행위에 대부분의 청소년은 무력하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 청소년 알바와 관련해 신고된 부당행위는 1만5755건으로 전년도(7173건)보다 갑절 이상 많았다. 수당 등 각종 임금 체불이 6498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어린것이 돈만 밝힌다’는 편견에 자주 짓밟힌다. 중학교 때 가정불화로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어느덧 4년차 ‘노동자’가 된 임슬기(가명·18)양은 어리다고 무시당한 기억이 수두룩하다. 사장들은 대개 “일할 땐 어른 구실을 요구하고 돈을 줄 땐 아이 같기를” 바랐다. 어느 고깃집 사장은 “오늘부터 당장 일해달라”며 “시급은 너 일하는 거 봐서 한달 뒤에 4600원을 줄 수도 있고 4900원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식당 매니저는 “여자는 잘 웃어야 시집도 잘 간다”며 슬기양의 등을 은근히 쓰다듬었다. 부당한 걸 모르지 않았다. “힘들 게 구한 일자리여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몰라서 당했다기보다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요.” 2년째 사무보조 일을 하고 있는 슬기양은 ‘포기’하는 데 익숙해진 듯 보였다. “일상적인 언어폭력은 어딜 가든 있는 거잖아요. 언어폭력 같은 건 대응하려면 복잡해지고 그나마 쉽게 챙길 수 있는 게 돈이에요.” 미래를 묻는 질문에 그는 “어차피 나한텐 기회가 없었다”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는 “정부의 정책은 물론 일반적인 사회인식도 청소년의 노동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에 인색하다. 이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성인 노동자로서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뒤에도 권리를 적극 주장하기 어렵고, 자신의 노동자성을 폄하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은 단지 노동과 관련한 법률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주장하고 확보하는 능력과 인권감수성을 함께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한겨레신문


     

  • 첨부파일
    142944092265_2015042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