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피아가 만든 ‘노동 지옥’
ㆍ용역 현장책임자 37% ‘낙하산’
ㆍ노동자들에 성추행·폭언해도 업체가 바뀌어도 잘릴 일 없어
한국공항공사가 김포공항의 청소 업무를 외부 용역업체에 위탁하면서 자사 퇴직자들을 간부로 채용토록 의무화하는 강제 조항을 둔 것으로 확인됐다. 김포공항 청소를 맡은 용역업체 여성노동자들이 성추행과 폭언에 시달렸던 것은 이 같은 ‘낙하산 의무화’ 조항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이 한국공항공사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공사는 지난해 청소용역 입찰 공고를 내면서 참가 업체들에 “우리 측과 사전 협의 후 현장대리인을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현장대리인은 본부장이나 소장 등 용역업체를 대표하는 현장 총괄책임자를 말한다. 원청회사인 공사가 용역업체 업무 책임자를 낙점하는 구조인 것이다. 공사는 또한 각 용역업체에 세부 업무내역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특수 과업지시서’에서 현장대리인의 자격기준을 “공항 근무경력 10년 이상”으로 제한했다.
현재 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14개 공항의 업무를 위탁받은 43개 용역업체 현장대리인 81명 가운데 37%에 해당하는 30명은 공사 퇴직자로 확인됐다. 현장대리인이 아닌 일반 간부까지 더하면 퇴직 후 용역업체에 자리를 마련한 공사 출신 인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로 구성된 공공비정규직노조 강서지회는 이날 “낙하산으로 내려온 공사 출신 간부들은 3년에 한 번씩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상관없이 자리를 그대로 지켰다”며 “마음대로 폭언과 욕설을 하고 성추행까지 저질러도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 성추행을 저지르고 업체를 그만둔 공사 출신 퇴직자 ㄱ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김포공항 내 주차관리업체로 이직해 아직도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가 용역업체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들면서 결국 ‘공피아(공항+마피아)’들이 그들에겐 천국이지만 노동자들에겐 지옥인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오는 26일까지 공사가 직접 나서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 등을 위한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공사 측은 “용역업체 현장대리인 경력 제한을 폐지하고 공사 출신 현장대리인 선임을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