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대책 사각지대에 놓인 ‘실내 노동자’
옥외작업과 달리 권고 수준 가이드라인만 … “강제력 있는 대책, 지속적인 지도·감독 필요”
▲ 학교비정규직노조가 2020년 7월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자체와 정부에 급식노동자 온열질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여름철에 물류센터에서 무거운 상품을 옮기다 보면 땀을 많이 흘려 옷에 소금꽃이 핍니다. 더위를 먹어서 그런지 피곤하고 속이 안 좋을 때가 많아요.”
정동헌(28)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동탄분회장은 17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수많은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물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몇 대로 버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회에 따르면 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올여름 들어 물류센터 내부 온도가 섭씨 30도 이상으로 치솟는 사례가 빈번하다. 지난 7일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여성노동자 2명이 탈진해서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정 분회장은 “2시간마다 20분 정도는 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름이면 삽시간에 땀에 젖는 급식노동자들
“튀김 만들 때면 몸이 솥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아”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도 여름이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서울 관악구의 한 공립단설유치원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유혜진(49) 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 급식분과장은 “가뜩이나 급식실은 고온 다습한데 여름에는 일을 시작한 지 30분도 안 돼서 옷이 다 젖는다”고 말했다.
많은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20년 7월 학교비정규직노조가 급식실 노동자 4천6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한 달 내 온열질환 증상을 겪었거나 동료 중 온열질환 증상을 겪은 경우가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 2천150명(46.5%)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에서 각급 학교에 보낸 공문에는 작업장에 시원한 물을 비치하고 냉방시설을 가동하는 한편 휴식을 부여하는 등 온열질환 대책을 강구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교차감염 우려로 식자재가 든 냉장고에 식수를 보관하지 못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에어컨에서 살모넬라균이 증식할 수 있어 선풍기만 켜는 경우도 있다. 급식실 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휴식도 언감생심이다.
여름철에는 식단에서 튀김이나 볶음 요리를 줄여 달라고 학교측에 요청해도 대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 분과장은 “한여름에 튀김을 할 때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솥 안으로 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며 “학교측이 따를 수 있는 실효성 있고 강제력 있는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지난 7일 쿠팡인천물류센터에서 측정한 물류센터 내부 온도와 습도. 섭씨 31.5도에 80%의 습도가 기록돼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실내 작업장 가이드라인은 내놓았지만…
“옥외 노동자처럼 체감온도에 따른 휴게시간 부여해야”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29일 내놓은 ‘열사병 예방 이행 가이드라인’에는 물류센터처럼 실내온도가 실외온도보다 높은 작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가이드라인은 △실내온도가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작업장 내 냉방장치를 설치하고 △냉방장치를 설치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창문이나 출입문을 여는 등 더운 공기가 실내에 정체되지 않도록 하고 △아이스조끼·아이스팩 등 보냉장구를 지급·착용하도록 했다.
가이드라인은 옥외작업에 대해서는 픅염특보 발령 기간에는 매시간 10~15분씩 규칙적인 휴식시간을 제공하고, 근무시간을 조정해 무더위 시간대 옥외작업을 최소화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내 작업에 대해서는 불가피한 경우 휴식시간을 부여하고 작업일정을 변경하라는 수준에 그친다.
문제는 실내 작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권고사항일 뿐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다. 반면 옥외 작업자에게 휴식시간을 부여하라는 가이드라인 내용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법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위반시 5천만원 이하 벌금이나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안전보건규칙 566조는 “사업주는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에 적절하게 휴식하도록 하는 등 근로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를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함으로써 열사병 등 건강장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로 개정하는 내용의 안전보건규칙 개정안이 지난 4월25일 입법예고됐다. 입법예고 기간은 지난달 7일까지다. 폭염시 옥내·외를 불문하고 건강장해 우려가 있는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도록 하기 위한 방안인데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개정 안전보건규칙이 시행하더라도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지속적인 지도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동훈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실내 노동자들은 폭염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폭염시 옥외 노동자에게 매시간 10~15분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것처럼 실내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체감온도에 따라 적절한 휴식을 부여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폭염 대책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명 신훈 기자 입력 2022.07.18 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