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계고 실습 사고, "수업권만 보장해도 잃지 않았을 목숨들"
[인터뷰] ‘직업계고현장실습피해자가족모임’ 이상영 씨
2011년 12월 광주 기아차 공장 김 모군
2014년 진천 CJ 공장 김동준 군
2014년 울산 현대차 공장 김대환 군
2015년 외식업체 토다이 김동균 군
2017년 제주 생수 공장 이민호 군
2017년 엘지텔레콤 해지 방어팀 홍수연 양
2021년 여수 요트업체 홍정운 군
지난 10여 년, 실습 현장에서 사망한 직업계고(이른바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름이다. 관련 업무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 교육만이라도 이뤄지고, 실습교육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하지 않았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사고는 기업체 실습현장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2019년 국회 교육위 소속 박경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조사,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5-18년 4년간 직업계고 실습실에서 일어난 안전 사고는 총 1284건이다. 사고는 매년 증가해 2015년 275건에서 2018년 376건으로 약 37퍼센트 늘어났다. 사고 유형은 베이거나 찔리는 사고, 물체와의 충돌, 화상, 방사선이나 유독성 물질, 전류 노출 등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노동력 착취’. 실습이 정규 교육으로 편성돼 학생들이 거부하거나 문제 제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 이것이 현재 직업계고 학생들이 놓인 현실이다.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현장 직무 능력을 갖추고, 학생들이 기업들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이뤄지는 현장실습제도는 1963년 학교의 실습 자제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1993년 이 제도는 신경제 5개년 계획에 따라 이른바 ‘3D' 업종 노동력 공급을 위한 것으로 왜곡됐다. 그즈음 2년은 공부하고 1년은 현장에서 실습한다는 '2+1' 제도는 이미 현장의 노동력 착취와 각종 산업재해 문제를 낳았다.
그 뒤 2006년 교육부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 2012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 2013 교육부-노동부 '학생안전과 학습 중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 2016 직업교육훈련촉진법 강화 등이 발표됐다. 하지만 이는 속속 무력화됐다. 2006년 처음 나온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은 2008년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실습을 진행한다는 조치로 무산됐다. 2011년에는 현장실습생들의 야간 노동을 제한한 방침이 나왔음에도 2014년 야간 교대 노동 중이던 실습생이 사망했다.
2017년 다시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이 발표되면서 2018년부터 조기취업 형태의 실습이 전면 폐지되고, 현장실습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인 ‘학습중심’ 현장실습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는 현장실습생의 ‘노동자’ 지위를 없애면서 기존보다 더 싼 임금으로 일을 시킬 빌미가 됐다. 현장실습생이 학생이기 때문에 근로계약서 범주를 벗어났고, 임금은 실습비가 됐다. 전반적 퇴보였다.
학생들은 학업의 연장에서 실습을 하기 위해 현장에 갔지만, 그들은 노동자로서도 학생으로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국민권익위원회,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이 그간 “누더기”라 표현하는 현장실습제도의 모순을 지적하고 끊임없이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문재인 정부에 이어 현 정권도 아직 실질적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올해 1월 직업계고 현장실습 피해자 가족 모임(가운데 이상영 씨)과 서울교육단체협의회(서교헙)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직업계고의 현장실습 폐지를 요구했다. (사진 제공 = 이상영)
현재 직업계고 현장실습 개선에 대해 직업계고 졸업생, 노조,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2017년 현장실습 중이던 제주의 한 생수 공장에서 기계에 끼어 사망한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상영 씨는 아들의 사고 뒤, ‘직업계고현장실습피해자가족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족모임은 민호 군 사망 사고의 철저한 조사와 진상 규명을 위해 2018년에 만들어졌으며, 실습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김동균, 김동준, 홍수연, 홍정운 학생의 부모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상영 씨는 장사하느라 민호를 남의 손에 맡겨 키워야 했지만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진로를 정해 직업계고에 진학했었다면서, “민호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너무 힘이 든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민호가 사고를 당한 뒤에야 접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문제는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실습은 정부가 경제논리로 어린 학생을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킬 뿐만 아니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힘들어서 누가 쉽게 가지 않으려는 업체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학생들의 주장이나 생각은 고려하지 않는 그런 제도였습니다.”
이상영 씨는 “교육법상 현장체험학습은 존재하지만 현장실습이란 단어는 없다. 말 그대로 현재 현장실습은 법에도 규정되지 않은 위법행위”라면서, “그런데 어떻게 실습을 내보냈는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하 직촉법)을 교묘히 이용해 직업계고 학생들에게만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촉법은 1969년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살리기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상영 씨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는 한국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독일과 스위스의 도제제도를 들여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과 스위스는 장인, 명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문하생으로 정예 인원만 뽑아 도제로 기술을 전수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 독일 도제를 가져다가 시행했고, 실패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교육부 연구원들을 동원해 스위스 도제를 가져다 지금까지 실행하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근거도 없고 법도 없는 제도를 진행하다 도제법을 만든다고 했지만 폐기됐죠.”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된 법은 21대 국회에서, 국회 교육위가 아닌 환노위를 통해 부활했다. 이상영 씨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법을 교육위가 아니라 환노위에서 ‘산학일체형 도제법과 학습지원 제도’를 통과시킨 것"이라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폐기시킨 법을 부활시켰을 뿐 아니라 이 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한 현장실습은 없다. 학생 수업권을 보장하라”
직업계고 실습과 관련해 당사자들 일부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안전한 실습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상영 씨를 비롯한 ‘현장실습피해가족모임 및 현장실습폐지 추진위’는 현재 관련 법, 교육과정 상에서 “안전한 현장실습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상영 씨는 “실습 현장이 대부분 영세업체인 상황에서 노동권을 보장받기 어려운데다, 학생들이 자신이 실습할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대부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계 고3들처럼 학교에서 11월30일까지 정상 수업을 하고 12월 한 달 동안 취업 준비 기간으로 정해, 기업체와 학생들이 만나 학생 스스로 실습할 현장을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11월 말까지 수업하면서 노동권과 안전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해 홍정운 군 사고를 보면, 2학기 시작과 함께 실습을 나갔고 첫날 사고가 났습니다. 직업계고 실습 시간은 교내 실습 120시간이 포함됐는데, 1학기는 이론 수업, 2학기는 실습입니다. 그런데 정운 군은 실기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바로 실습을 나간 것이죠. 사고 조사를 담당했던 해경수사관이 학교 수업 일정표를 보고 ‘수업 일정대로 수업이 이뤄졌다면 정운이는 전문가 수준의 잠수인이 됐을 텐데 왜 교육을 시키지 않고 실습을 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영 씨는 “수업 일정만 지켰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이 있었다”고 내내 안타까워하면서, “그러니 제발 수업시간이라도 지켜 교육하고 실습을 내보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기업체 발굴 역시 정부(노동부)가 직접 나서서 해야 한다. 그렇게 양질의 현장실습 업체 발굴이 자리를 잡으면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허울 좋은 현장실습은 폐기하고 정상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정부에서 책임지고 발굴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이상영 씨는 “민호를 떠나보내고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어쩌다 보니 현장실습에 대해 알게 됐고 너무 잘못된 것 일을 모른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자식은 잃었지만 나 같은 아픔을 또 다른 부모가 겪게 할 수 없다. 더 이상 어린 학생들이 경제논리에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학기 중 현장실습이 폐지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명 정현진 기자 입력 2022.07.29 1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