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총파업]“20년 근무했는데 월급 200만원” “동일 노동, 차별 대우”
예술인·교육가·환경미화원…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무기계약직? 달라진 것 없어
추가 근무에 ‘고용 불안’까지
우리도 더 나은 삶을 원한다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 왼쪽부터 임호천씨(38), 박주식씨(67), 김해정씨(44). 이상훈·우철훈·김정근 선임기자
3~5일 총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모였지만 하는 일은 보육, 교육지원, 환경미화, 악기연주, 무대설치 등 다양하다. 최근에야 노조에 가입하고 처음 파업에 나온 이들도 많았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부당함을 항의해도 듣지 않는 사용자’와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도 받는 차별’이 거리로 나온 이유라고 밝혔다.
■ 거리로 나선 예술인들
국립국악원에서 26년차 피리 연주자로 일하는 박치완씨(47) 등 국악원 연주단원 135명은 지난해 8월 처음 노조에 가입한 뒤 파업에 나섰다. 이곳 단원들은 2년마다 국악원과 재계약하는 기간제 노동자다. 계약기간이 끝날 즈음엔 오디션 형태의 ‘근무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일방적인 취업규칙 개정으로 근무시간이 1.5배로 늘어났지만 임금 인상은 없었다. 밖에선 실력을 인정받는 단원들이지만 입사해 처음 받는 돈은 200만원 수준이다. 박씨는 “시대가 바뀐 만큼 예술계 선후배로서의 정에만 호소할 게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해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국립극장에서 무기계약직으로 14년째 일하는 김순복씨(48)도 처우 개선 요구를 사측이 외면하자 파업에 참여했다. 국립극장에서 일하는 공무직들은 전문성이 높다. 박사학위 소지자도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극장 홍보, 기획, 마케팅, 전산전문서버 운영, 음향기술, 무대의상·소품 담당 등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근속수당도 없다.
20년 넘게 근무한 전산담당 직원이 받는 월급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대예술부 소속인 김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같은 일을 하는 공무원들과 비교할 수 없게 월급이 적다. 여성 공무원의 경우 육아 시 유연근무제를 활용할 수 있지만 공무직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김씨는 “과거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 공무직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며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바꿀 수 없을 것 같아 파업에 나섰다”고 했다.
우리도 더 나은 삶을 원한다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 왼쪽부터 신현우씨(55), 조순옥씨(55), 김태곤씨(27). 이상훈·우철훈·김정근 선임기자
■ 교육 현장에 만연한 차별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어린이와 학생들을 돌보는 노동자들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차별을 토로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장애학생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16년차 특수교육실무사 ㄱ씨(49)는 과거 1년 단위로 계약을 이어가다 2014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그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의 대소변 가리기, 식사지도, 학습지도 지원 등을 한다. 그는 장애학생들을 돌보는 업무 특성을 핑계 삼아 학교 관리자들이 “노동자가 아닌 봉사자로 본다”고 했다. 감정에 호소해 대가 없는 추가 노동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ㄱ씨 같은 특수교육실무사들은 1년에 석 달을 쉬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마땅히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워 수입이 없다. 불가피하게 일을 쉬어야 하는 사정 때문에 16년차이지만 경력은 9년만 인정받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서 ‘에듀케어 강사’로 일하는 4년차 ㄴ씨(44)는 둘째가 일곱 살이지만 자신이 일하는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지 않는다. 에듀케어 강사는 단설·병설 유치원에서 주로 방과후에 아이들을 보육하는 노동자다. ㄴ씨는 “엄마가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보고 배우며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2016년 서울시교육청 교육공무직 공채로 입사했다. 앞서 2010년부터 2년간 초등학교 돌봄교사로 일하며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함을 견디기 힘들어 일을 그만뒀다. 에듀케어 강사도 마찬가지였다. 계약과 달리 정규과정이 진행되는 낮에는 사실상 유치원 교사의 보조 역할을 한다. 아이들 수업 때나 식사 때, 화장실 갈 때, 야외활동을 할 때도 이들이 쫓아다닌다. 같은 자격증을 가진 사립유치원·어린이집 교사에 비해 처우는 크게 떨어진다. ㄴ씨는 “정부 차원의 대책 없이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어서 파업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 “하는 일이 다른 것도 아닌데…”
전북 전주시에서 위탁업체 환경미화 노동자로 일하는 김비룡씨(32)는 “똑같은 일을 하는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정규직은 퇴근하고 비정규직은 일하는 때도 있다”고 했다. 환경미화 노동자는 지자체에 소속된 정규직과 위탁업체 소속인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김씨 같은 위탁업체 소속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김씨는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 6일 일한다. 일요일에 출근하는 때도 있다.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상여금을 포함해 세전 280만원이다. 정규직과 달리 호봉도 인정되지 않는다. 김씨는 “하는 일이 다르다면 처우가 다른 것을 인정하겠지만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차별받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규직으로 차별 없이 일하고 싶다”고 했다. 정대연·이효상·탁지영 기자
* 출처 : 경향신문 2019. 7. 4
* 해당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032154005&code=9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