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녹는 폭염 속 오체투지·미사 “쌍용차 문제 해결” 종교계 다시 연대
조계사부터 대한문까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조계종 스님, KTX 승무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면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조계종 스님·KTX 승무원
쌍용차 해고노동자 등 60명
고 김주중씨 49재 전까지
정부·사측 대책 마련 촉구
천주교, 4년 만에 또 거리로
“대량해고는 사회적 고통
고통받는 이들 위해 기도”
수은주가 37.1도를 가리킨 2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사람들이 목탁 소리에 맞춰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내던졌다. 일어나서 서너 발짝을 옮긴 뒤 멈춰선 이들은 다시 아스팔트에 엎드렸다. 무릎을 꿇고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뒤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하는 불교의 ‘오체투지’였다. ‘머리, 팔, 다리를 땅에 던진다’는 말 그대로 이들은 온몸을 아스팔트에 던지며 중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까지 갔다. 절을 할 때마다 땀이 ‘후두둑’ 떨어지며 검은 아스팔트에 얼룩으로 번졌다. 행렬 맨 앞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의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옆에 선 해찬 스님의 이마에는 까맣게 먼지가 묻어 땀과 함께 흘러내렸다.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위해 종교계가 다시 연대에 나섰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이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오체투지’를 실시했고,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도 미사를 재개했다. 쌍용차 문제 해결 진도는 더디다.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죽음이 이어졌다. 지난 6월27일 해고노동자 김주중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의 30번째 죽음이었다. 해고노동자들이 동료 등 22명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2012년 4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대한문 앞에 설치한 분향소 이후 4년8개월 만인 지난달 3일 다시 대한문에 분향소가 꾸려졌다.
오체투지엔 스님과 쌍용차 해고노동자, 시민 등 6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김주중씨의 49재인 14일 전까지 문재인 정부와 사측이 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오체투지는 2015년 1월, 지난 3월에 이어 세 번째다. 오체투지에 나선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아무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삶의 벼랑으로 내몰렸다. 이전 정권에서 일어난 문제라고 하더라도 정부가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한다. 더딘 속도에 김주중씨도 하늘로 갔고 많은 해고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노사 합의로 해고 4526일 만에 복직이 결정된 KTX 승무원들도 오체투지에 함께했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우리는 복직하게 됐지만 아직도 다른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 KTX 승무원의 힘든 싸움에 쌍용차노조가 함께해주신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함께해 희망의 기운을 드렸으면 한다”고 했다.
쌍용차 분향소 앞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지난 1일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차 분향소 앞에서 해고노동자 복귀를 촉구하는 미사를 열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천주교는 ‘거리의 미사’를 다시 시작했다. 서울 낮 기온이 39.6도로 1907년 기상관측 시작 이후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한 지난 1일 오후 7시엔 분향소에서 노동사목위원회 주관 미사가 열렸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미사를 봉헌하는 이 자리는 단순히 직장을 얻자는 것이 아닙니다. 고용안정이라는 보물, 인권이라는 진주를 찾고자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싸움의 가장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우리는 몹시 미안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노동사목위원장인 정수용 신부가 집전한 ‘거리의 미사’에 신부와 수녀 10여명과 시민 70여명이 참석했다. 시민들은 연신 손부채질을 했지만 미사가 끝날 때까지 한 명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미사는 이날이 3회째였다. 천주교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은 4년여 만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매일 미사’가 대한문 앞에서 2013년 4월8일부터 11월18일까지 225일 동안 열렸다.
정 신부는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머무르며 기도하고 지켜주는 것이 천주교의 사명”이라고 했다. 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두고 정 신부는 “누군가의 고통 덕분에 사회는 조금씩 좋아진다. 쌍용차 대량해고가 엄청난 사회적 고통으로 인식됐기 때문에 다시 대량해고는 어려운 한국 사회가 됐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모습은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쌍용차 문제가 처음 불거진 2009년부터 계속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종교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배제하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며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했다. 나 신부는 “세월호 등 다른 사회적 약자 문제에도 연대하는 쌍용차 해고자들을 보면서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모습을 배웠다. 해고노동자들이 각별한 친구이자 이웃이 됐다”고 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쌍용차 해고 문제가 10년째가 됐는데 불교의 법회, 천주교의 미사, 개신교의 기도회 등 종교계가 해고노동자들과 늘 함께해왔다. 엄청나게 뜨거운 날씨지만 늘 많은 분들이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함께해주는 데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종교계와 함께 14일 대한문 분향소에서 김주중씨의 49재를 연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 출처 : 경향신문 2018. 8. 2
* 해당원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022136015&code=9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