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 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사이트에 등록된 생동성 시험 지원자 모집공고.

김승환(31)씨는 이따금 '아르바이트 모집' 문자를 받는다.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 시험) 지원자 모집사이트 운영자에게서 온 문자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40만원을 지급하고 주변 지인분을 참여시키면 1인당 2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김씨가 처음 생동성 시험에 지원한 것은 대학원생 시절이다. 생활비가 절실히 필요했다. 고혈압 치료제를 먹고 1박2일간 병원에 있으면 45만원이 나온다고 했다. 한 달간 주말 뷔페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야 겨우 벌 수 있는 큰돈이라서 마음이 혹했다.

대학생 채진병(25)씨는 얼마 전에도 생동성 시험에 지원했다. 1년 전에는 고혈압 치료제,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시험에 참여해 40만원과 50만원을 벌었다. 대학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처지라 이만한 '꿀알바'가 없다며 두려운 마음을 삭였다.

"마루타 된 기분이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시험 과정은 비슷하다. 먼저 신체검사를 하고 시험과정과 약물 부작용 가능성을 안내받는다. 두 조로 나뉘어 약을 먹는다. 한 조는 실제 약, 다른 조는 효과를 비교할 가짜 약이다. 자신이 어느 쪽인지 지원자들은 모른다. 그 후 침대에서 안정을 취한다. 약 효과를 점검하기 위해 10~20차례에 걸쳐 조금씩 피를 뽑아 간다.

김씨는 "부작용은 없었지만 내 존엄성이 뭉개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작할 때부터 내 몸에 가격이 붙고 몸을 거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았다"며 "약을 먹고 나서 간호사가 제대로 삼켰는지 면봉으로 입안을 쓱 훑는데 그때 '내가 진짜 마루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채씨는 "무섭기는 했지만 돈이 필요해서 온 거니까 부작용이 좀 있어도 관두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고 했다. '사례비'는 시험이 끝난 후 지급되기 때문이다. 시험을 중간에 그만두면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다면 임상시험에서 발생한 부작용은 그저 모른 체하고 넘겨도 되는 것일까. 17일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시험 규모는 세계 7위다. 매년 급증하고 있다. 국내 임상시험 승인현황은 2005년 185건에서 지난해 652건으로 10년 새 3.5배 늘었다.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임상시험 피험자들의 중대한 약물 부작용 반응 횟수는 476건이나 됐다. 이 중 입원이 376건, 사망이 49건이었다.

늘어나는 시험 '저소득층 알바'로 변질

그러나 정부는 "신약 개발 역량을 늘리겠다"며 임상시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8월 보건복지부는 '임상시험 글로벌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민간 임상시험 유관기관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임상시험에 드는 통상비용을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이나 난치병 환자의 임상시험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도 담았다.

지난 16일 저녁 참여연대가 개최한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 토크쇼에 참석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현재 임상시험은 공공기관의 관리 없이 민간 제약기업이 주도하고 있고, 연구 목적보다 판매 약품 개발을 위한 상업적 시험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업적 시험에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를 대어 주고 돈이 필요해 쉽게 시험을 중단하지 못할 저소득층 참여를 늘리겠다는 건 대단히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생계비가 필요한 청년들이 시험에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홍보도 부쩍 증가해 일반 아르바이트 구인사이트에도 수십 건씩 시험지원자 모집공고가 등록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대학생 16.3%가 경험한 '고위험 아르바이트' 중 13%가 생동성 시험이었다. 대학생들은 당장 급한 생활비(35.8%)나 등록금(18.1%) 등 생계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고 답했다.

정형준 국장은 "기업들이 기존 약품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복제약을 더 만들어 이익을 내려고 생동성 시험을 늘리고 있다"며 "피험자에게 위험이 전가되는 시험이 필요한지 사회적 판단을 할 때"라고 말했다. 채진병씨는 "대학생들이 임상시험에 지원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도 함께 살펴 달라"고 호소했다.



[생동성 시험]
판매 중인 약품의 복제약을 제조·시판하기 전에 기존 시판 약품과 비교해 동등한 효과를 내는지 검증하는 시험이다. 임상시험의 일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