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빼앗긴 사람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제외’ 비판 나선 5인 미만 사업주
“누군가의 권리를 내 이익과 바꾸는 근로기준법 11조 1항 폐지하라”
근로기준법을 피하려 ‘무늬만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수법에 노동자들이 직접 공동고발에 나선 지 596일. 고발 사업장이 총 114곳에 이르지만 ‘5인 미만’ 위장 개선은 요원하다. 이에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가 직접 발언에 나섰다.
동대문에서 5인미만 옷가게를 운영하는 안이지씨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 ‘일하는사람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 주최 기자회견에서 “누구의 권리를 나의 이익과 바꾸길 원하지 않는다”며 “더 이상 노동자들을 갈라치기 하지 말라”고 말했다.
안씨는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들이 사업을 하면서 정작 힘든 것은 내가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당연한 권리인 최저임금을 주고, 연월차를 주고, 연장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한 수당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살인적인 임대료, 카드 수수료, 감당하기 힘든 부가세율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함께 일하는 그들과 우리를 더 이상 나누지 말라”고 말했다.
안씨는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를 당신들이 노동법에 예외 조항을 둘 정도로 위한다면 우리와 처지가 다를 것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방법 말고, 임대료를 정책으로 지원해 달라. 정부 지원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상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 동대문에서 5인미만 옷가게를 운영하는 안이지씨가 19일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2019년 사업체 노동력조사 기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수는 356만명에 달한다. 5인 미만 업장에는 해고를 둘러싼 규정과 연차유급휴가‧휴업수당‧휴게시간‧연장근로제한 등 근로기준법상 보호에서 배제하는 규정을 악용해 사업장을 5인 미만인 것처럼 위장하는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권리찾기유니온을 비롯한 노동사회단체들이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하도록 요구해왔지만 개정 논의는 뒤로 밀려났다. 지난해 12월1일부터 올해 1월4일까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가 8차례 열렸지만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고민할 사항이 너무 많으므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전문가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논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류하경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대외협력팀장)는 “차별지대 법제도를 악용하여 사용자 책임과 법적 의무를 회피하는 위장 사업장이 모든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인 근로기준법 개정보다 대통령 후보들간에 지저분한 사생활 폭로전이 더 급한가”라고 비판했다.
▲ 류하경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대외협력팀장)가 19일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아파트 경비노동자인 신영석씨는 이날 발언자로 나서며 “가짜 5인 미만 병원 장례식장에서 견디지 못해 퇴사하고, 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새로 일을 구했는데도 또 다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났다”고 했다. 신씨는 “ㅎ금융그룹 관계사인 ㅇ종합시설관리에서 일하지만 버젓이 사원수를 860명으로 기재하고 매출이 300억이 넘지만 연차휴가도 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신씨에 의하면 해당 사업주는 휴게시간을 맘대로 기재해 놓지만, 별도의 휴게공간이 없어 노동자들은 경비실 안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민원에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하다. 신씨는 “그런데 휴게시간을 적어두었으니 야간수당도 제대로 안줘도 되고, 감시단속 근로자 승인을 받았는지 연장수당도 안 줘도 된다고 한다”며 “주민들의 민원처리, 출동,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소독, 분리수거까지 하는데 감시단속 근로자에 해당하고, 휴게시간을 주고 있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 기자회견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입법추진단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하은성 노무사는 “개개인이 부당행위를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해서 입증하고 싸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사업주는 버젓이 원천 무효인 계약을 제시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동시에 일상적인 근로감독 체계를 구축해야만 현실에서 만연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신씨와 '일하는사람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울고용노동청에 5인 미만으로 위장해 근로기준법을 피해가는 4개 사업장 고발장을 접수했다. 하 노무사에 의하면 조사 진행은 설 연휴 후 이뤄질 예정이다.
기자명 윤유경 기자 입력 2022.01.20 10:59 수정 2022.01.20 12:48 댓글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