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위한 노동개혁이라더니, 청년 실업급여 빼앗는 박근혜 정부
고용보험법 개정안 수급요건 강화로 6만2천명 자격 상실...청년층 피해 가장 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자에게는 구체적 '양보와 희생'을, 자본가에게는 추상적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청년고용을 명분으로 정규직 '일반해고 요건 완화',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추진하면서, 청년고용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보이지 않는 식이다.
노사정위원회 합의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청년 고용에 대해서는 '노력한다'는 조항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렇게 노력을 해서 기업이 창출하겠다고 밝힌 청년 일자리의 대부분은 정식 신규채용이 아닌 인턴 등 임시 일자리들이다.
노동자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대가로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그나마 실업급여 수준 인상 정도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업급여 인상해 사회안전망 강화하겠다더니
새누리당 수급조건 까다롭게 한 법 개정안 발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 노동개혁의 방향을 밝힌 대국민담화에서 "정부도 근로자 여러분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더욱 튼튼히 하고, 비정규직 보호를 한층 강화해 나가면서 노사정 대타협을 적극 뒷받침 해 나갈 것"이라며 실업급여 개정 방향을 밝혔다.
"먼저, 실직한 근로자가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업급여를 현재 평균임금 50% 수준에서 60%로 올리고, 실업급여 지급기간도 현행(90~240일)보다 30일을 더 늘릴 것입니다."
저성과자 해고 등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노동자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할 것이 뻔한데, 실직에 대비한 안전판을 강화하겠다고 하니 그나마 반길 일이었다. 그러나 이후 드러난 구체적 내용을 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은 노사정위 노동개혁 합의에 따라, 노동개혁 관련 5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실업급여와 관련해서는 '고용보험 개정안'을 의원 전원 서명으로 당론 발의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업급여액을 실직 전 평균임금의 50% 수준에서 60% 수준으로 상향조정하고,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현행(90일~240일)보다 30일 늘려 120일~270일까지로 한다. 여기까지는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그대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종전에는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실직 전 18개월 내에 180일 동안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있으면 됐는데, 이를 실직 전 24개월 내에 27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조건을 강화했다. 또 실업급여 하한액이 현재는 최저임금의 90%인데, 이를 최저임금의80%로 낮추는 내용도 새누리당 개정안은 담고 있다.
새누리당 개정안은 당근과 채찍을 같이 포함하고 있는 셈인데, 당근은 실업급여액 50%에서 60%로 상향조정, 실업급여 지급기간 30일 연장이다.채찍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고용보험 가입기간 현행 6개월을 9개월로 늘린 것이다. 실업급여액을 인상한다니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문제는 당근은 실효성이 낮고, 채찍은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가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실업급여액 인상과 실업급여 수급기간 연장 혜택을 볼 노동자들은 많지 않고, 청년 아르바이트 등 단시간 노동자, 일용직, 저임금 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실업급여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내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고용보험 고질적 문제 사각지대 해소 방안은 담지 않고...
우선 고용보험의 실태를 알아보자. 고용보험은 4대보험 중 하나로, 실직으로 인한 소득 상실 기간 동안 생계를 보장하고,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1993년 고용보험법이 제정됐고, 1995년부터 시행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8년부터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고용보험 적용이 확대됐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주 15시간(월 60시간)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도, 일용직도 고용보험 의무가입 대상이다. 그러나 고용보험에는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임금노동자를 1명 이상 고용한 사업주는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보험료(사용자 0.65%, 노동자 0.65% 각각 납부)를 아끼기 위해 가입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이렇게 가입대상인데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가 2013년 8월 기준, 393만명으로 추정된다.
학원 강사, 보험업계, 백화점 등에서 개인사업자 형태로 고용돼 일하는 소위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아예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명목만 사업자일뿐 사실상 노동자인 만큼 이들까지 고용보험 등 4대보험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번에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에 이런 사각지대 해소 방안은 전혀 담지 않고, 오히려 고용보험 수급만 더욱 까다롭게 강화했다.
수급자격 강화하면 약 6만2천명 수급자격 잃어
피해는 주로 청년층에 집중될 듯...
새누리당 개정안대로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조건을 강화하면 어떻게 될까? 현재는 실직전 18개월 이내에 6개월 이상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있으면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새누리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직 전 24개월 이내에 9개월 이상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있어야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실업급여 받기가 더 까다로워지는 것인데,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수급자격 강화로 수급자격을 잃게 되는 노동자들은 약 6만2천여 명에 달한다. 피해는 주로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 청년층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2일 노동부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권을 잃게 되는 6만2천명 중 29세 이하 청년이 26.8%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30대(22.2%), 40대(20.7%), 50대(20.1%), 60세 이상(10.2%)이 뒤를 이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수급권을 많이 잃었다. 1~9인 사업장 노동자들이 42.0%로 가장 많았다. 10~29인 사업장은 20.5%로 예상됐다. 이어 30~99인(15.1%), 100~299인(9.9%), 300~999인(6.3%), 1천인 이상(6.3%) 순이었다.
실업급여 수급기간 연장 당근은 효과 있을까?
하한액 인하는 취약계층 수급액 낮출 수 있고
수급기간 연장은 실효성 없는 조치라는 비판 나와
채찍은 청년층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을 정확히 향하는 셈인데, 그렇다면 실업급여액 인상과 수급기간 연장이라는 당근은 효과가 있을까?
우선 현재 실업급여 지급 체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현재는 비자발적 이유로 실직한 경우, 실직 전 18개월간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180일 이상이면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심사를 거쳐 대상에 선정되면, 연령과 고용보험 가입기간에 따라 최소 90일에서 최대 240일간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1년 미만이면 90일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 50세 이상으로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면 최대치인 240일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는 실직 전 평균임금의 50%를 지급하는데, 상하한액이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실직 전 아무리 월급을 많이 받았어도 실업급여를 상한액 이상은 못 받고, 아무리 적은 월급을 받았어도 최소 하한액은 보장 받는다. 상한액은 정액제로 현재 일 4만3천원이고, 하한액은 정률제로 최저임금의 90%다. 따라서 하한액은 매년 결정되는 최저임금에 따라 달라지는데, 올해 하한액은 4만176원이다.
현재 실업급여 수급실태를 보자. 국회예산정책처의 '실업급여 사업평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실업급여 수급자 중 상한액 적용자는 25.3%이고, 하한액 적용자는 65.9%, 50% 적용자는 8.8%다. 수급자의 대부분이 상한액 보다는 하한액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같은 자료에서 2013년 실업급여 수급자의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보면, 90일 수급자가 24만8120명(27.3%)로 가장 많다. 이어 150일 수급자 20만5258명(22.6%), 120일 수급자 18만1271명(20.0%), 180일 수급자 12만7928명(14.1%), 210일 수급자 9만2588명(10.2%) 순이다. 240일 수급자는 5만3142명(5.8%)에 불과하다.
이 통계를 보면 수급자의 약 절반 가량(47.3%)가 4개월 미만 수급자이며, 수급자의 84%가 6개월 미만 수급자이다. 즉, 수급기간을 90~240일에서 120일~270일로 연장해도 대다수의 수급자는 6개월 미만 수급에 그친다는 얘기다.
결국, 실업급여 수급자 중 하한액 적용자가 많은 상황에서 하한액을 최저임금 90%에서 80%로 인하하는 것은 취약계층 노동자의 급여 수준을 낮출 수 있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대다수가 6개월(180일) 미만 수급자인 상황에서 수급기간 연장은 별 실효성이 없는 조치일 수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구직급여 기간을 늘려준다는 게 이를테면 당근인데, 그 당근조차 속을 들여다보면 평균 수급기간이 114일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는 데다 오히려 급여액만 줄어든다"고 짚었다.
저임금 노동자 실업급여 깎고
실업급여 문턱 높이는 개악
고용보험은 사각지대 해소를 통한 보장성 강화를 지향해야 한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런데 소위 노동개혁 국면에서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듯 겉포장을 했지만, 속은 취약계층의 수급권을 박탈해 사각지대를 오히려 늘릴 수 있는 이상한 정책을 내놨다.
고용보험은 도입 이후 계속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성장해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실업급여 지급일수를 60일~210일에서 90일~210일로 확대했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최저임금의 70%에서 90%로 상향 조정했다. 이런 고용보험의 역사를 감안하면, 새누리당 개정안은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급여를 깎고, 실업급여 문턱을 높이는 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실업급여를 더 주겠다고 (정부에서) 이야기를 해서 아주 좋겠다 하고 보니까, 현재는 고용보험을 180일만 내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는 270일을 내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니까 대략 약자들 중에서 15만 명 정도가 아예 해당이 안 된다. 과거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15만 명 정도가 못 받는다는 얘기다"라며 "그냥 좋은 법으로 가시지 (박근혜 정부는) 왜 이렇게 약자들만 대상으로 꼭 사냥하는 것처럼 그런 법들을 내시는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