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건설노동자 끝내 숨져, 얼어붙는 노동 정국
양아무개씨 불 붙인 지 하루 만에 사망 … 민주노총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
▲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에 항의해 노동절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 지역 간부가 끝내 숨졌다. 고인과 함께 노조활동을 한 김현웅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이 2일 오전 한강성심병원 앞 기자회견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노동절 아침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한 건설노조 간부가 끝내 숨졌다. 민주노총(위원장 양경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설노동자의 분신·사망에 사과하고 책임자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응답이 없다면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정권 퇴진 요구다.
고인 시신 속초로, 가족장 치를 듯
민주노총 “사과 없으면 정권 폭망 투쟁”
노동절인 지난 1일 오전 9시35분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댕겨 병원으로 이송된 양아무개(49)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하루 만인 2일 오후 1시9분께 사망했다. 고인은 분신 이후 전신화상으로 심정지를 겪었고 강릉 아산병원으로 이송했다가 다시 헬기로 1일 오후 1시께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화상으로 호흡기까지 다쳐 치료에 어려움을 겪다가 수술을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고인은 분신 전 노조 SNS에 남긴 유서에서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공갈이라고 한다”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썼다. 고인의 장례는 노조와 유가족이 협의 중이지만 가족장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이날 오후 유가족은 고인의 시신을 강원 속초시의 한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노동계는 분노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은 고용안정과 생존권을 위한 건설노조 활동을 부패하고 파렴치한 존재로 몰아세우며 전국적인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구속수사를 했다”며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전방위적 탄압은 결국 건설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극단의 저항을 불렀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대통령 사과와 국토부 장관 해임 등 정당한 요구에 답이 없다면 대가는 정권 폭망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 대한 공격을 지지율 관리수단으로 생각하고 노동절에 보수단체를 동원해 맞불집회를 기획하는 얄팍한 꼼수는 노동자와 민중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분신으로 저항하고 오늘 운명을 달리한 조합원의 명복을 빌고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120만 조합원이 함께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민주노총은 당초 정부의 전향적인 대응을 요구할 방침이었지만 고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실상의 퇴진요구를 전면에 제기했다.
“7~8개월 교섭해 얻은 임·단협인데”
강요·갈취·업무방해로 둔갑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시작한 정부의 건설현장 실태조사와 수사 결과 전국 13개 건설노조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950여명이 소환조사를 당했다. 이 가운데 15명이 구속됐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조합원들도 상당수다.
이들의 혐의는 유사하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교섭요구와 조합원 채용을 위한 고용안정협약, 법상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에 따른 전임비 지급 등을 형법상 해석한 방식이다. 정부와 경찰은 조합원 채용 요구는 강요로, 전임비 지급은 공갈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노동쟁의는 업무방해로 봤다.
건설노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건설노조가 연 기자회견에서 강한수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미디어에서도 하급인생으로 멸시받는 이른바 ‘노가다’인 건설노동자가 노조를 만든 뒤 7~8개월 넘게 교섭하면서 겨우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이를 건폭이라고 한다”며 “노가다들이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 대기업 건설사를 상대로 협박하고 강요해 금품을 갈취했다는 혐의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1년에 짧게는 서너 번, 많게는 대여섯 번씩 고용과 해고를 반복해야 하는 우리가 고용요구를 하는 게 불법이라면 대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며 “정부도, 건설사도 고용을 하지 않으려 하면서 우리도 고용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면 우리 가족들 생계는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따졌다.
동료들 “조합원 생계 지키려다 파렴치범 돼”
한국노총 “명복 빌어, 검경·정부가 공동 가해자”
특히 갈취·협박 같은 죄목이 고인을 비롯한 건설노동자들을 격앙시켰다. 고인과 함께 노조 강원건설지부에서 일한 김아무개 지부 사무국장은 “고인이 분신 전 노조 SNS에 올린 유서에서도 드러나듯 갈취 같은 혐의를 부당하게 여겼다”며 “조합원이자 간부로 자부심을 갖고 조합원 생계를 지키기 위해 했던 활동을 파렴치범으로 내몰아 분노가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원에서만 조합원 1천명 중 600여명이 해고 상태라 이번 같은 사망이 윤석열 정부 내내 되풀이할까 두렵다”며 “고인의 뜻을 이어 이 정부를 끝장내는 투쟁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분신 사망한 건설노조 간부의 명복을 빈다“며 “정부에 건설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토끼몰이식 강압수사와 탄압 중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이어 “경찰은 1계급 특진을 내걸고 건설노동자에게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건설현장 특수성에도 관행을 모두 불법으로 몰아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며 “대형 재개발·재건축비리, 수억원대의 부정청탁과 불법 재하도급 같은 토착비리엔 눈 감고 저항력이 약한 노동자에 대해선 강압수사로 일관한 경찰과 검찰, 정부가 공동 가해자”라고 지적했다.
이재 기자 jael@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