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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폐기율 '1%' 새벽배송...사람은 폐기되고 있습니다.
    • 등록일 2020-11-0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7
  • 폐기율 '1%' 새벽배송...사람은 폐기되고 있습니다.


    “혹시 색맹이에요?” “네?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아직….”

    말이 끝나기 전에 바코드 스캐너의 신호음이 들렸다. 마주 서 있던 사내가 바구니에 담긴 상품을 들고 뛰었다. 일이 시작된 것이다. 10월 27일 마켓컬리 서울 송파 물류센터 냉장창고 ‘다스’ 작업장에서 하루짜리 ‘버튼’ 노동자로 일했다. 풀타임 근무 시간은 오후 4시부터 새벽 1시까지. 시급은 최저임금인 8590원으로 일급은 심야 수당을 포함해 8만7623원이다.

     
    일자리 구하기는 쉬웠다. 온라인 구직사이트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마켓컬리 ‘알바’ 공고가 올라왔다. 첫 근무 시 1만원을 더 얹어준다는 업체를 택했다. 마켓컬리 알바 채용은 마켓컬리가 아닌 채용대행업체(파트너사)가 전담한다. 대행업체 담당자에게 희망 근무 날짜와 시간, 이름, 나이, 성별을 적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출근 확인문자가 왔다. 근무 당일 업체가 지정한 출근 시간(오후 3시 30분)보다 30분 일찍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대행업체 데스크에 가서 처음 왔다고 하자 전자계약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줬다. 계약 체결까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모든 항목에 동의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마켓컬리 배송차량/경향DB

     

    ■쉽게 부리고 자르는 노동

     

    안전교육 이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예’라고 체크했다. 이날 안전교육은 없었다. 현장 투입 전 대행업체 직원이 “최근 지게차에 치이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니 지게차 소리가 들리면 한쪽으로 피하라”고 언급한 게 전부다.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사측이 고지한 시간보다 일찍 출근해 대기한다. 제시간에 꼭 맞춰 왔다가는 일감을 받지 못하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출근 지시를 받고 왔더라도 현장에서 잘리기 일쑤다. 사실상 불안정한 ‘선착순’ 채용이다. 마켓컬리가 인력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일까.

    마켓컬리의 핵심 역량 가운데 하나는 데이터 분석을 통한 예측 시스템이다. 고객들의 주문 내역과 시기별 제품 수요, 상품의 가격 변동 추이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해 주문량을 예상하고 재고를 채워넣는다. 당일 주문을 받아 새벽 출고가 가능한 것도 견고한 예측 알고리즘의 힘이다. 예측 실패는 재고 물량 폐기, 회사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회사는 예측과 실수요 사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마켓컬리는 주당 258만건의 데이터 예측을 통해 1% 안팎의 폐기율을 유지한다.

    그런데 고도화된 예측 시스템에서 일용직 노동자는 배제된다. 폐기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는 상품과 달리 인력은 예측에 실패해도 손실이 없다. 인력은 폐기해도 썩지 않고 마켓컬리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는 넘쳐난다. 이 때문에 마켓컬리는 ‘인력 저수지’가 마르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춰 인력 공급 시스템을 운용한다. 채용대행업체를 통해 넉넉히 사람을 모집하고 필요한 만큼만 쓴다. 불필요한 인력은 현장에서 잘라낸다. 졸지에 탈락한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일절 없다. 마켓컬리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는 ‘센터에서 대기하다 잘려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하소연이 매일 올라온다.

    노동자 입장에선 부당하다. 하지만 문제 삼지 못한다. 항의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규 노무사(노무법인 한벗)는 “전형적인 사용자 갑질”이라며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이후에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채용 방식은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채용대행업체가 보낸 ‘출근 확인문자’는 채용에 대한 구두 합의나 채용 내정으로 볼 수 있다”며 “사실상 ‘선착순’으로 채용하면서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해고로 볼 수 있고 신뢰이익 배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켓컬리 측은 “일부 채용 파트너사들이 과하게 채용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파트너사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행하라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알바’가 떠받치는 물류 시스템

     

    처음 온 노동자들도 별도의 업무 교육을 받지 않고 현장에 투입된다. 일은 눈치껏 익힌다. ‘알바’가 ‘알바’를 보고 일을 배우는 건데 이 과정에서 감정이 상해 노동자끼리 싸우는 일이 빈번하다. 이 때문에 채용대행업체 담당자들은 업무 투입 전 ‘일터에서 싸우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차례 강조한다.

    신규 노동자들은 주로 다스(Digital Assorting System) 작업 현장에 투입된다. 주문 들어온 상품을 수량만큼 분배하는 작업이다. 다스를 뛰는 노동자는 색 구분이 필수다. 스캔 작업을 하는 ‘스캐너’ 노동자가 빨강·노랑·초록·파랑 바구니에 각각 상품을 분류하면 ‘버튼’ 노동자는 바구니와 같은 색깔 LED 불이 들어온 바구니에 상품을 집어넣는다. 색깔과 수량에 맞춰 상품을 넣은 뒤 LED 버튼을 눌러 불을 끄는 것까지가 업무의 기본 패턴이다.

    분류가 끝난 바구니에 END 표시가 뜨면 ‘엔드’들이 바구니를 빼서 ‘포장’에 넘긴다. 스캔 속도는 버튼의 다리보다 빠르다. 쉴 새 없이 뛰어야 스캔 속도를 맞출 수 있다. 버튼은 보통 둘이 하는데, 한명이 더디면 다른 한명이 더 뛰어야 한다. 냉장창고지만 금방 땀이 났다. 패딩 조끼가 땀으로 젖었다.

     

    마켓컬리 일용직 노동자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편의점. 자리가 부족해 편의점 앞 바닥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 반기웅 기자

     

    5시 50분, 저녁 식사시간이 됐다. 음식은 제공되지 않는다. 주로 구내식당이나 주변 편의점에서 자비로 사먹는다. 어디든 노동자들이 몰리기 때문에 자리가 부족하다. 자리를 놓친 사람들은 편의점 밖 길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운다. 70분간의 식사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장으로 복귀했다. 이번에도 버튼을 맡았다. 일이 손에 익어 제법 속도가 났다. 다만 옷을 여러 겹 껴입은 게 화근이 돼 땀이 많이 났다. 마침 갈증이 나서 회사 조끼를 입고 있는 매니저에게 “어디서 물을 마실 수 있느냐” 물었다. 매니저는 “일하면서 물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답했다. 짧은 대화를 하는 틈에도 상품이 쌓였다. 다시 뛰었다. 1시간쯤 지나 관리자로 보이는 매니저에게 “물을 마시고 싶다”고 요청했더니 “곧 쉬는 시간이니 그때 마시면 어떻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 개인 생수를 챙겨올 수는 없었다.

    결국 휴식시간이 돼서야 정수기를 찾아나섰다. 일터였던 2층 작업장 인근에는 정수기가 없었다. 일단 냉장창고 밖으로 나가서 대기하며 봐둔 정수기로 갔는데 종이컵이 없었다. 지나가는 매니저에게 “종이컵이 없다”고 얘기했더니 창고로 다시 들어가면 1층 작업장 정수기가 있으니 그리 가보라고 했다. 하지만 1층 정수기에도 종이컵이 없었다. 다시 매니저를 찾아 물었더니 또다시 다른 정수기가 있는 위치를 알려줬다. 세 번째로 찾은 정수기에는 종이컵이 있었다. 물 한잔 마셨을 뿐인데 20분 휴식시간의 절반이 지났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바닥에 앉았다. 다른 동료들도 바닥과 계단에 앉아 쉬었다.

    근로계약서에는 “생산작업 중 근로자의 휴식시간 부여 필요 시 판단에 따라 추가 부여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물 마실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휴식시간이 끝난 뒤 다시 버튼이 됐다. 새벽 1시. 업무가 끝났다. 다시 대행업체 데스크를 찾아 퇴근 명부에 확인 서명을 하고 나왔다. 우르르 몰려나온 노동자들은 심야버스와 택시를 타고 흩어졌다. 버스를 타고 복귀해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플랫폼이 만든 야간 노동 시즌2

     

    마켓컬리의 샛별배송(새벽배송)은 출시 5년 만에 새로운 쇼핑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농장에서 식탁에 이르는 ‘팜 투 테이블’의 소요 시간을 최소화하는 한편 안정적인 콜드 체인(저온유통체계)을 도입해 세상에 없던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을 창출했다. 마켓컬리가 개척한 시장에 쿠팡과 헬로네이처, 신세계(SSG닷컴), 현대백화점 등이 뛰어들면서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새벽배송의 선두주자인 마켓컬리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5년 매출액 29억원에 그쳤던 마켓컬리는 지난해 428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매출 1조원 돌파를 내다보고 있다. 시중에는 마켓컬리의 혁신 비결과 인사이트를 분석한 책과 보고서가 쏟아져 나온다.

    반면 마켓컬리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은 좀처럼 조명을 받지 못한다. 새벽배송은 쿠팡의 로켓배송이 그랬듯 물류센터 일용직과 배송기사의 노동이 필수다. 새벽배송 시장이 성장할수록 밤에 일하는 물류 노동자와 야간 택배 기사 등 야간 노동자 수도 늘어난다. 새로운 서비스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야간 노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야간 노동/ 김상민 기자

     

    <과로 사회>의 저자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90년대 대형 유통 자본이 365일·24시간 영업을 통해 밤을 ‘노동의 시간’으로 편입시켰다면 지금은 플랫폼 자본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김 연구위원은 “이전 유통 자본이 만든 야간 노동은 기존 법과 제도로도 어느 정도 규제가 가능했지만 플랫폼의 야간 노동은 새로운 형태여서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벽배송을 위한 야간 노동을 ‘규제 완화와 기술의 발전이 결합해 초래한 이윤추구를 향한 무한경쟁의 부산물’이라고 정의한다. 박 연구위원은 “새벽배송은 이제껏 편리하고 유용한 서비스로만 인식돼 왔지 이면의 부작용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새벽배송처럼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야간 노동이 정말 필요한 노동인지 사회적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노동을 2급 발암물질(Group 2A)로 규정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도 야간 노동을 ‘유해 요인’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플랫폼 자본은 야간 노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마켓컬리는 물류센터 노동은 야간 노동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새벽 배송기사의 경우 회사에서도 야간 노동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밤샘 노동을 하지 않는 마켓컬리의 물류센터 노동은 야간 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켓컬리 측은 “오전부터 새벽 1시까지 계속 일하는 게 아니라 오후에 일을 시작하는데다 충분한 수면 시간을 보장한다”며 “노동 강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 환경이라고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야간 노동에 대한 마켓컬리의 인식이 플랫폼 자본의 전형적인 시각이라고 설명한다. 박주영 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몇시에 업무를 시작했든 밤 10시부터 1시까지는 야간 노동에 해당한다”며 “야간 노동자라는 개념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야간 시간대 근무하면 그게 야간 노동”이라고 말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우철훈 기자

     

    ■2급 발암물질 ‘야간 노동’

     

    지난달 소셜미디어에서는 ‘위험한 마켓컬리 작업 현장’의 실태를 고발한 게시글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해당 게시글은 수백건 넘게 공유됐고, ‘마켓컬리 작업장은 위험한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마켓컬리 측은 해당 게시글이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게시글에서 언급한 안전모·안전화 미지급 등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산업안전보건법과 안전수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어서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해명했다.

    산업안전 전문가의 견해는 다르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새벽배송이 ‘위험한 노동’을 담보로 돌아가는 물류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강 교수는 “야간 노동의 사고 유발 가능성이 주간 노동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통용되는 상식”이라며 “현행 산안법은 물류 관련 안전보건 규정이 허술하다. 특히 새벽배송과 같은 새로운 산업을 관리 감독할 근거 규정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행법상 위법 사항이 없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켓컬리 일용직 노동자 김성배씨(가명·44세·서울 중랑구 면목동)는 4년째 대리운전과 쿠팡 플렉스, 택배 상하차 등 야간 노동을 해왔다. 낮에는 원 직장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 또 일하는 ‘투잡’이다. 밤낮으로 일하는 날 김씨의 노동 시간은 하루 15시간에 달한다. 김씨는 “택배 상하차는 몸이 버티질 못해 그만뒀고, 쿠팡 플렉스는 단가가 너무 낮아져 마켓컬리로 넘어왔다”며 “힘들지만 애들 키우려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플랫폼이 만든 일자리에는 김씨와 같은 장시간 야간 노동자들이 몰린다. 장시간 야간 노동의 확대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전문가들은 야간 노동의 확대는 기업이 강물에 폐수를 무단 방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야간 노동의 폐해는 쿠팡·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사고처럼 즉각 나타나기도 하지만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위험 요소가 축적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배송시장에 편입되는 단기 알바 노동자는 건강관리를 할 제도적 틀이 없고 건강상태를 추적할 방법이 없다”며 “장시간 야간 노동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 링크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201107105200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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