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끊은 이재학씨 유족 “그럴싸한 프리랜서 PD 14년…일은 정규직, 월급 160만원뿐”
“청주방송, 열악하고 비상식적 대우”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 압박·회유로 패소 주장…공동 조사키로
지역 민영방송인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다 부당해고를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학 PD의 유가족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청주방송에 책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저희 형 이재학 PD는 약 14년간 프리랜서 PD라는 그럴싸한 이름하에 주어진 근로, 노동에 비해 그 14년간 받은 대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고 비상식적이었습니다.”
지난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재학 PD에 대해 동생 이대로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재학 PD는 지역 민영방송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했다. 2004년 만 22살 때 계약서도 없이 조연출로 청주방송에 입사했다. 근로계약이 뭔지, 근로기준법이 보호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던 때였다.
4~5년간은 친구를 만날 틈도 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작지만 프로그램 하나를 맡는 일들이 생겼고, 주위에서 그를 ‘PD’라 부르는 사람도 늘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이재학 PD의 업무는 방송국 정규직 PD들의 업무와 유사해졌다. 스스로 팀을 꾸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지방자치단체 사업을 따내기 위한 계약업무, 방송국의 사업 정산업무 등도 수행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를 ‘프리랜서 PD’로만 취급했다. 이 PD는 2017년부터 2년간 매주 목요일마다 1시간씩 방영되는 <아름다운 충북>의 책임 PD를 맡았다. 한 주에 2일은 촬영을, 3일은 편집을 했고 남는 시간에는 다음주 방송을 준비했다. 그러나 처우는 열악했다. 이 PD와 조연출에게는 회당 40만원이, 작가에게는 30만원이 지급됐다. 14년차 이 PD의 월급은 160만원에 불과했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임금 인상을 건의하자, 청주방송은 “프로그램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며칠 후에는 담당국장이 이 PD를 불러 “맡고 있는 다른 프로그램도 전부 그만두라”고 통보했다.
정규직처럼 일해왔지만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손쉽게 해고된 것이다.
2018년 4월 해고 한 달 만에 이 PD는 법원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청주방송의 직원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취지다. 이 PD 측은 내근 시 출퇴근 기록 및 함께 근무한 동료들의 증언 등 관련 증거 56건을 제출했지만 상당수의 증거가 법정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지난달 22일 청주지방법원은 이 PD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PD를 대리한 이용우 변호사는 “고인의 주장과 증거는 외면됐고, 핵심 증거인 고인과 장기간 같이 근무한 동료들의 증언은 동료들이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에서 배제됐다”며 “회사는 자료제출을 거부한 채 증언한 동료들에게 회유·협박으로 일관했고, 결국 법원은 이에 편승한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PD의 유족과 청주방송 경영진은 최근 면담을 진행하고 고인의 죽음과 관련된 진상조사를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PD의 유족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은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주방송이 겁도 없이 행해 온 위증 행위, 직원에 대한 갑질·압박·회유, 나아가서는 비상식적인 자회사 운영 및 직원 운영 행태 등 모든 불법 사항들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어 “방송·언론계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일명 프리랜서라는 명목하에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불법노동착취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 출처 : 경향신문 2020. 2. 12
* 해당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22129015&code=9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