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서울대 노조 파업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인질'로 잡았나
1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출입문에 난방재개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연합뉴스
“학생들을 인질 삼아 본부와의 협상용 카드로 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연대를 요구하네요. 자신의 권리를 챙기고자 남의 권리를 짓밟는 자와의 연대는 없습니다.”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도서관 난방이 중단된 후 서울대학교 학내에 붙은 자보 내용이다.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장은 도서관 난방 중단을 응급실 폐쇄에 빗대 “공동체를 이끌 미래 인재의 공부와 연구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는 사회적 금기”라는 칼럼을 언론에 기고했다. 오세정 총장 역시 “노동자의 처우가 열악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학생들을 볼모로 삼는 파업은 안된다”고 했다.
서울대 노동자의 파업은 정말 학생들의 학습권을 인질로 잡은 것일까. 애초 이런 행위는 문제일까.
■불편 없는 파업은 불가능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쟁의행위’를 “파업, 태업, 직장폐쇄, 기타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와 이에 대항하는 행위로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이 저해되면, 당연히 사용자와 제3자의 불편이 따른다. 철도노조 파업으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시설관리직 파업으로 난방이 중단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김승현 노무사(노무법인 시선)는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며 파업하라는 건, 사실상 파업하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헌법과 법률이 파업권을 보장하는 이유도, 약자인 노동자가 이러한 불편을 사용자와의 교섭에서 ‘최후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라는 취지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학생을 ‘인질’이나 ‘볼모’로 잡았다고 표현하지만,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파업은 성립하지 않는다. 불편함이 클수록 파업 효과도 크다. 그럴수록 노사의 교섭이 타결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도서관 난방이 중단된 후 학내에 붙은 자보. 서울대학교 대자보숲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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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상 문제는 없었나
서울대 노동자들의 파업은 법적 절차에 따라 결정됐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동조합은 1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의 마지막 조정이 결렬된 후 쟁의권을 인정받았다. 총 11번의 교섭, 2번의 조정에도 자발적 합의에 도달하기는 어렵다는게 지노위 판단이었다. 일단 ‘정당한 쟁의행위’로 공식 인정을 받으면, 여러 법적인 보호도 받을 수 있다. 파업에 따른 피해가 발생해도 사용자가 노조를 상대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도 금지된다. 사람의 안전이나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유지업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그 업종은 통신, 전기, 혈액공급을 비롯해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10개 업종에 불과하다. 대학 시설의 난방 공급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김 노무사는 “대체인력이 투입되면 파업의 효과는 급격하게 줄어든다”며 “법률이 필수유지업무를 별도로 규정하는 이유는, 그 외 업종에 한해서는 파업 효과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시설관리국 관계자는 “대체인력 투입은 불가능하지만, 기계실을 점거해 다른 서울대 직원이 난방을 켜지 못하게 한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같은 법인의 다른 직원이 업무를 대체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현행 규정은 ‘대체 인력’을 신규 채용, 외부업체 하도급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해석은 노동자들의 파업 동력을 약화시킨다.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이 기계실 점거에 나선 것도 이때문이다. 다만 학교 측은 12일 단체교섭을 타결하면서 이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고, 노조 역시 학교 구성원에게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했다.
그나마 이번 ‘난방 파업’은 파업을 통해 노사 합의 이끌어낸 성공 사례에 속한다. 대부분은 파업 주체나 목적, 절차 등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 경우 불법파업으로 간주돼 사용자로부터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 전면 파업 돌입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실한 단체교섭 등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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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에 대한 책임은 누구 몫인가
파업에 따른 불편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해소할 1차적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지하철 이용객들이 제 시간에 도착하도록 열차를 운행할 의무는 운임을 받는 철도공사에 있다. 학생들에게 도서관 이용의 편의를 제공할 책임도 노조가 아니라 학교 측에 돌아간다. 다만 이러한 편의를 제공하지 못한 원인이 노동자의 정당한 쟁의행위 때문이라면 사용자 측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파업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며 “기본적으로 사용자는 파업을 막기 위해 노동자와의 교섭에 성실히 참여해야 하고, 그럼에도 교섭 결렬이 예상된다면 고객들에게 이러한 사정을 미리 알려 대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후의 불편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권 변호사는 “프랑스에서는 지하철 청소 노동자의 파업으로 휴지가 쌓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나도 그런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업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때, 사용자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을 느낄 수 있다.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학내 기계·전기 노조 파업 관련 서울대 총학생회의 입장서를 읽고 있다. 서울대 총학은 이날 “도서관을 파업 범위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하겠다”는 종전 입장을 뒤집고 “쟁의의 장기화를 막고 학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조와 연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파업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1일 서울대 파업 관련 보도를 모니터링한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파업 관련 기사에서는 ‘시민들 교통 불편’, ‘출퇴근길 발 동동’ 같은 내용만 실릴 뿐,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하게 됐는지, 노동자와 사용자 간 갈등은 무엇인지 등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며 “서울대 파업의 경우,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노동자들이 왜 파업이라는 극한 상황에 내몰리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상황을 중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 역시 “파업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가 아니라 사회악으로 묘사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도 반하는 보도”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 출처 : 경향신문 2019. 2. 13
* 해당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2131651001&code=940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