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 건 배달해 650원 받는데···'노동자'가 아니라고요?" 택배노조 김태완 위원장
김태완 택배연대노조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물류센터엔 철판으로 된 지붕 한 장만 있어요. 뚫린 벽으로 바람이 숭숭 통하는 물류센터에서 이 날씨에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분류작업을 하면 손가락에 동상이 걸리죠. 폭염 속에서는 찜통이 되고요. 우리가 보통 노동자라면 대책을 세울 텐데….”
지난 7일 서울 서대문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48)은 ‘말 그대로 사각지대에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노동자 처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택배노조에 소속된 CJ대한통운 택배기사 800여명은 지난달 CJ대한통운에 노조와 교섭하자고 요구하며 일주일 동안 파업을 했다. 김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가 최소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조금씩 개선해나가 보자는 게 문재인 정부가 노조 설립필증을 내준 취지일 텐데, CJ대한통운은 이걸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택배일을 시작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동네에서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배달기사까지 됐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일요일만 빼고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했다. 지리를 익히고 배송이 손에 익은 뒤에도 오전 7시에 출근하면 오후 7~8시가 돼야 퇴근할 수 있었다.
기사들의 노동시간이 긴 것은 오전에는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오후에야 배달을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택배회사는 분류작업에 대해서는 돈을 주지 않고, 배달 건당 수수료만 지급한다. 한 건을 배달하면 기사의 손에 떨어지는 수수료는 평균 650원. 차량 유지비와 유류비 등을 빼고 나면 집에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월 300만원 남짓이다. “일하는 시간으로 나눠보면 최저임금도 안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CJ대한통운이 덩치를 키워갈수록 업무는 팍팍해졌다. 2016년에는 ‘2회전 배송’ 제도가 시범 도입돼 올해부터 전면 시행됐다. 전에는 기사들이 오전에 물류센터에 와서 물건을 분류하고 오후에 배송을 나갔는데, 분류시스템을 바꿔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들어와 물건을 가지고 나가게 했다. 김 위원장은 “택배물량이 늘어 터미널이 포화상태가 되니까 부지를 늘리는 대신 기사들이 번갈아 들어오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터미널에 하루 2~3번 가야 하니 유류비도 더 들고 업무시간도 길어지는데 수수료는 그대로거든요. 부지를 늘리는 데에는 돈이 드니까, 기사들의 노동강도를 올려 비용을 전가하는 게 아닌가요.”
올들어 CJ대한통운 대전터미널에서 2명이 사고로 숨졌다. 옥천터미널에서도 상하차 작업을 하던 택배기사가 사망했다. 김 위원장은 “터미널에 대형 트레일러나 간선차가 들어와서 물건을 내리는데 신호수조차 없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이 레일에 차를 대고 물건을 내리는데 1m 옆에서 대형 트레일러들이 왔다갔다 해요. 트레일러가 후진하다가 끝에 있던 택배기사 차를 쳐서 문짝이 뚝 떨어지는 걸 본 적도 있어요.”
택배기사들이 노조를 만든 것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위험해지는 업무환경에 지쳐서였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11월 특수고용노동자 노조로는 최초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설립필증을 받았다. 하지만 기사들의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하는 CJ대한통운은 교섭 테이블에 나오지 않았다. CJ대한통운은 이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인지 확실치 않다며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에 교섭에 나올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파업을 겪으면서 ‘회사가 정말 노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보다’라고 느꼈다고 한다. 사측은 파업이 시작하자 파업 지역으로 가는 택배를 거부했고, 기사들은 일감이 끊겼다. 김 위원장은 “전국 택배 물량의 50% 가까이를 점유한 CJ대한통운이 대리점과 기사들의 거래가 끊기게 만들면서 기사와 대리점에게만 손실을 떠안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가 막힌 조합원이 늘면서 노조는 일주일 만에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김 위원장은 “파업으로 고객들께 불편을 드려 안타까웠지만 서비스 개선을 위해서라도 노조를 지지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배송을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고객들 덕에 피곤이 한순간에 싹 풀릴 때도 있어요. 하지만 하루에 300~400개 물건을 들고 나와서 배송하려면 송장에 ‘전화주세요’라고 찍혀있는 걸 보면서도 전화를 못 드릴 때도 있습니다. 최소한이라도 노동조건이 나아지면 고객서비스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택배는 앞으로 더 늘어날 거고, 소비자들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택배노동자가 일하는 여건을 개선하고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남지원 기자
* 출처 : 경향신문 2018. 12. 9
* 해당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091610001&code=9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