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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9-11]“차별과 형제애의 경계에서"
    • 등록일 2019-07-0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0
  • <기획강론: 감정노동과 우리 사회 4>

    차별과 형제애의 경계에서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2019.7.7. 연중 14주간 주일 강론

    이주형 요한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찬미예수님!

     

    형제 자매여러분, 지난 한주 무더위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모쪼록 하느님께 쉼을 위해 선물하신 오늘이 여러분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차별과 형제애의 경계’, 그리고 일꾼됨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소임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동문제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습니다!”

    우리는 노동운동, 노동조합, 파업 등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에서 우리 모두가 그런 내용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무관심해지거나 편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노동사목에 오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그런데 노동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 그랬군요!” 하고 금세 공감하게 됩니다. 자세히 알아보고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제가 무지했음을 절감합니다. 사실 저도 근로계약서조차도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제가 되어서도 본당사목이 바쁘다는 이유로 노동문제나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일하시는 비정규직 형제자매님들 9만여 명이 3일간 대규모 파업을 했습니다. 지난 주 광화문 광장에는 주최 측 추산 약 53천여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왜 모였을까요? 급식조리사, 기간제교사 등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을 비롯해서 각계각층의 분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사회로부터 지지와 공감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국내 전체 임금노동자의 4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불안한 고용과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차별과 냉대입니다.

    이상적 목표입니다만 불완전하고 불안한 형태의 노동인 비정규직은 없어져야합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이 없어지기도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어느 순간 차별과 냉대가 됩니다. 형제애와 공동체 의식이 사라집니다.


    자기들도 시험 쳐서 당당하게 합격해서 들어오라고 하세요.

    , 자신들의 권리 주장이 부당하다는 것을 모르죠?”

     

    이 이야기가 꼭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불가피한 경쟁 속에서 마땅한 절차와 개인의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는 존중받아야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이야기 속에 형제애와 동료의식, 그를 진정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주는 성숙한 의식이 있습니까? 아니면 너와 나는 다르다는 차별 혹은 어느새 굳어져버린 신분의식만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일자리, 고용,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간의 우정, 존중, 친교와 나눔, 이해와 배려, 함께하고 동반함 등의 가치마저도 상실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의 학부모들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지지합니다.”

     

    많은 불편과 혼란이 예상되었습니다만 다행히 파업은 일단락이 되었고 각 지자체 학교에서 큰 사건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특정 지역과 단체는 이번 파업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또 인천의 어떤 초등학교는 학생들이 불편해질 수 있지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의 권리를 함께 지켜주는 일"로 여겨달라는 가정 통신문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주도해 붙인 조리사 선생님들께라는 23개의 포스트잇에는 비정규직의 파업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의 사적인 의견이고, 이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겠으며 더욱이 파업 후 진행될 노사 간 교섭은 난항과 어려움을 겪겠지만,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혐오 같은 차별과 무책임한 막말만 내뱉는 이기적인 어른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희망차게 들립니다. 어른들은 이미 하지 못하는 것을 이 아이들이 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나의 가족으로, 친구로, 동료로, 그리고 소중한 사람으로, 인격체로 바로보고 대하는 것입니다.

     

     

    아주머니들 지금까지 감사했고 앞으로도 감사할 거예요.

    저희들 걱정 마시고 파업 잘하고 오세요.”

    유튜브 영상으로 조리원분들 근무 여건이 굉장히 안 좋다는 걸 알았어요.

    파업 잘 하시고 원하시는 바가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조리원분들이 정식 직원이 돼서 밥을 더 맛있게 해주시면 좋겠어요.”

     

    감정노동 문제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감정노동으로 고통을 받습니까? 업무의 성격 때문에 일의 강도와 빈도 때문에 그러하기도 합니다만 감정노동의 본질은 존중받지 못함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존중받지 못함의 뿌리는 바로 우리 의식 안에 있는 차별입니다.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상대방을 차별합니다. 그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내 욕심과 탐욕이 결합됩니다. 손님과 고객, 사용자와 종업원, 관리자와 피관리자라는 식으로 불가피하게 그어진 경계에서 욕심과 탐욕이 결합된 차별은 이제 무서운 완고함이 되어버립니다. 성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한 그 차별은 우리가 모르는 새 더욱 더 견고해지고 깊어집니다. 마침내 그것은 하나의 신분, 계급, 지역의 블록화, 집단 이기주의, 무관심이 되고 혐오와 분노로 번집니다. 차별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무서운 독약입니다.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만드는 태도가 바로 차별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며 자주 듣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어떠한 형태든 차별은 하나의 폭력입니다. 차별은 욕심과 교만, 이기주의가 합쳐진 참으로 무서운 칼날입니다. 비정규직이나 감정노동과 같은 노동문제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에서도 차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차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반성해야합니다. 그리고 차별과 형제애의 경계에서 매순간 선택하고 결심하며 실천해야합니다. 그를 형제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일꾼이 되어야합니다. 바로 평화와 사랑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상대방과 세상에 평화를 빌어주고 평화가 임하도록 힘써야합니다. 차별과 배척, 배제와 단절이 아닌 대화와 협력, 이해와 존중,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야합니다. 우리의 작은 결심이 씨앗이 되어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꼭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 물질만이 아니라 사랑과 형제애가 가득한 성숙한 사회를 위해. 그렇게 되길 진정 바랍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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