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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8-02]“너희도 한때는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너희도 또한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 등록일 2018-09-2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2
  • 2018년 9월 23일 연중 25주간 강론

    성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경축 이동

     

    “너희도 한때는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너희도 또한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신명기 10,19)

     

    이주형 세례자요한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찬미 예수님!

     

    최근에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의 3,8%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60% 이상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머물고 있고 어학연수생, 유학생, 결혼이주여성, 근로자, 환자, 난민 등 다양한 여러 유형의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도 외국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많아지다 보니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도 생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6월에 제주도 예멘 난민 체류 사태가 있었고 최근에 도심에서는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격 입니다. 대표적으로 고용문제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외국인들이 들어옴으로 해서 우리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하는 일은 농어촌에서의 일을 비롯해 공장 등에서 행해지는 힘들고 어려운 육체노동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불편하고 어려운 일들입니다. 반대로 그 누구도 기업과 정부의 고위 관리직이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방송인, 사회적 유명인사들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들이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사실 못살고 힘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깔보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반성도 해봅니다.

    물론 국내의 고용환경이 어려운 것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지혜를 모으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배척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처사는 아닙니다. 더욱이 그것을 빌미로 외국인들을 혐오하고 그들을 배척하는 것은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 신앙의 가르침에 분명히 위배됩니다.

     

    신앙의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그들을 우리의 이웃이자 협력자로 대하는 성숙한 태도이며 오히려 외국인이므로 낯설고 힘든 환경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태도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이므로 우리는 우정 어린 시각으로 그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이 어려움을 겪기에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에서 최약자에 속하는 이들을 돌보아 줄 것을 강조했고 명시적으로 떠돌이 신세에 있는 이주민들을 잘 도와주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너희도 한때는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너희도 또한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신명기10,19)

     

    저도 제 선후배 동창 신부들이 유학이나 해외 사목을 위해 외국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타향살이의 어려움과 향수병, 외로움, 문화적 이질감을 호소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처지의 우리 동료들을 우리가 동정하듯이 우리도 우리 주변의 외국인들을 사랑과 우정의 마음으로 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리 먼 과거도 아닌 불과 몇십 년 전에 우리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도 다들 외국에서 광부로 간호사로, 육체노동으로 힘들게 돈을 벌어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먹여 살리셨습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경축 이동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다피시 한국인 최초의 방인 사제 김대건 신부님께서도 마카오에서 유학을 하시고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 땅의 최초의 사제도 타향살이를 하며 그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타향살이의 고단함 속에서도 분명 어떤 선한 이의 도움으로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내시며 사제로 서품을 받으셨을 거라 상상해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그처럼 어려운 누군가에게 자비와 선의를 베풀 때 드러나고 완성됩니다. 한 주간을 살아가시면서 그러한 신앙의 가르침을 실천하시는 한 주간 되시길 빕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34-36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마태 25,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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