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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X 해고 여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미사 강론(성 마태오 사도 축일)
    • 등록일 2017-09-25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4
  • KTX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바라는 미사 강론 (성 마태오 사도 축일)

     

    2017년 9월 21일(목) 19:00 - 서울역 대합실 3층

     

     

    찬미예수님!

     

    서울역 대합실 무대에서 미사를 두 번째로 봉헌합니다.

     

    지난봄... ktx 해고 승무원들과 함께 하는 종교, 시민사회 대책위원회가 다시 구성되었고

    많은 분들과 함께 지난 7월, 이 문제를 알리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를 마련했었습니다.

     

    그 사이 몇몇 변화도 있었지만

    우리의 관심과 기도가 더 필요했는지...

    어제부터 해고 여승무원들은 다시 서울역 집중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도 함께 모여 지난 11년, 오늘로 4223일의 싸움을 이어가는 그들 곁에 서서

    함께 미사를 봉헌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마태오 사도의 축일입니다.

     

    마태오 사도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신약성경의 복음서 중의 하나인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마태오 사도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그는 세리, 즉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세금을 걷는 사람은 국세청 소속의 공무원이겠지만,

    예수님 당시 사회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신분이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로마 제국에 지배를 받는 속국이었기에

    당연히 세금을 걷는 사람은 민족의 배신자, 혹은 로마 제국의 부역자로 인식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민족을 등지고 매국 활동을 했던 것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 로마의 조세 제도는 세금을 걷는 사람을 정하는 과정에서 입찰을 하게 했고

    본인이 얼마를 세금으로 걷겠다고 써내서 많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

    조세 징수권한을 주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더 철저한 방법으로 세금을 내는 사람을 선호했었기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민족의 배반자,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사람,

    그래서 사회적 종교적 죄인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오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그 세리 자리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나를 따르라..”하신 예수님의 한 마디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모두 버립니다.

     

    이제 마태오에게 그가 이전에 누구였는가.. 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변화된 삶으로 나아가는 선택...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그 회심이 그를 사도가 되게 했고,

    복음서를 남기는 업적과 함께 오늘도 기억되는 예수님 제자로서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오 사도의 축일을 보내며.. ktx 해고 승무원들의 문제를 바라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 문제는

    비단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서른 세분 아니 서른네 가족의 문제만이 결코 아닙니다.

     

    처음 ktx가 개통될 때, 철도청은 이들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말을 바꾸어 홍익회 소속으로..

    철도청이 철도공사라는 공기업으로 전환된 후에는

    “청도유통”이라는 자회사 소속으로..

    그리고 지금도 코레일 관광개발이라는 자회사의 업무로 묶어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철도공사화 소속이 다르니 독립된 자회사의 업무라고 말합니다.

     

    이 주장을 하기 위해 철도공사는 공사 소속의 열차 팀장은 안전업무를 하는 정규직이지만,

    서비스 업무만 하는 열차 승무원은 핵심 업무인 안전을 담당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시속 300km가 넘게 운행되고 1000명 가까이의 사람들이

    18량의 객차에 나뉘어 달리는 열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비정규직인 승무원은 안전을 담당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누가 봐도 불법파견 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서류상의 업무 매뉴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그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열차 승무원들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과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철도공사는 안전도 포기하며 승무원들의 직접고용을 막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압니다. 바로 돈 때문입니다.

     

    돈을 더 벌겠다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그래서 인건비를 줄여 양질의 일자리인 정규직을 최소화해서 이윤을 극대화해야겠다는

    우리 시대의 탐욕이 지난 11년간의 이 고통을 낳은 것입니다.

     

    사실 ktx 승무원 문제는 지난 10년 넘게 진행해온

    우리 시대의 탐욕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문제입니다.

     

    그것도 어리고 힘없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해 온 일방적인 희생 강요였습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비용을 줄이고 사람을 잘라내고 외주화, 아웃소싱, 용역이라는 말로

    안전 업무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았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잘려나갔고 생명, 안전업무의 외주화 안에서 일어난 사고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생명이 사라져 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의 처절한 외침을 듣고 그들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세월호도, 구의역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청년도

    모두 안전업무의 외주화라는 탐욕에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라도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며

    마음을 돌리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ktx 해고 여승무원 문제는 그 회심에서 바라보아야 길이 보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것인가’하는 경제의 문제로만 본다면

    분명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마치 마태오 사도가 경제적 부우함과 사회적 영향력을 손에 쥐고

    예수님을 따르려 했다면 그에게도 길은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보다 마태오 사도는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

    무엇이 더 의미 있는가를 두고 고민했고

    그러하기에 자신이 누리던 것을 기쁘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ktx 해고 승무원들이 겪어왔던 고통을 보며

    이익의 극대화가 아닌 안전한 사회...

    더 이상 돈의 가치가 아닌 사람의 가치를 선택하려는 회심만이

    문제의 해결을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미사를 함께 봉헌하며... 4223일째 계속되는 ktx 해고 여승무원들을 위로하고

    하루빨리 문제의 해결을 바라며 함께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이익보다 생명과 안전을 중하게 여기고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회심을 이룰 수 있는 은총을

    자비하신 하느님께 함께 청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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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부님 강론.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