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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 레지오 마리애] 4월호 공장식 축산과 창조질서 보전
    • 등록일 2017-04-01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414
  • [201704]복음으로 세상 보기

    공장식 축산과 창조질서 보전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많은 순간 숫자로 표현됩니다. 가장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데 숫자는 분명 정확한 과학의 도구입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중요한 것들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나는 아주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문에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 비둘기가 있고…..” 이런 식으로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겐 “나는 십만 프랑 짜리 집을 보았어요.” 라고 말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그들은 소릴 친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숫자로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듯, ‘생명’ 역시 정확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 숫자 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작 그것에 가려 본질이 잊히기도 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 땅에 살고 있는 가축들에 관한 숫자입니다.


    작년 말에 시작해서 올 초까지 빠지지 않았던 뉴스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류인플루엔자 즉, AI(Avian Influenza)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닭이나 오리 같은 조류들 사이에 걸리는 감기인데, 모든 전염병이 그렇듯 한 마리만 감염되어도 주변으로 피해가 막심하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3300만이란 숫자는 11월부터 3월 초까지 AI 피해를 막기 위해 살 처분 된 가금류의 수입니다. 1년이 약 3150만 초로 되어 있으니 1초에 1마리씩 셀 수 있다 하더라도 1년 내내 잠도 안자고 꼬박 헤아려도 모자라는 정도로 엄청난 수입니다. 도대체 어떤 전염병이기에 이렇게 많은 닭과 오리 등을 살아있는 채 땅에 묻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우리나라가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닌데 살아있는 닭과 오리를 이렇게 땅에 묻을 만한 곳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들 정도의 규모입니다.

     

    작년 11월부터 3월 초까지 3300만 마리 닭, 오리 살 처분


     자료를 찾아보니 2016년 기준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축들은 산란계가 6985만 마리, 육계가 7642만 마리라고 합니다. 자연에서 닭은 평균 수명이 20~30년가량 되지만,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육계는 보통 35일 정도면 도축됩니다. 달걀을 낳기 위해 태어난 닭의 경우도 1년 4개월 정도만 살게 되는데, 이유는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랍니다. 산란계는 매일매일 달걀을 낳기 위해 가로 50cm, 세로 50cm 정도의 철제 케이지에 들어가고 보통 이런 케이지는 6~8층 정도로 쌓아 올립니다.


    이렇게 공장식 축산이 이루어지기에 한 번 전염병이 돌면 그 안에서 감염된 닭과 감염되지 않는 닭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지고 전체를 땅에 묻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사람들이 달걀을 꺼내고 판매를 위해 차량 등이 이동하기에 예방을 위해 AI 발병 축산 농가 뿐 아니라 주변 수 km 내에 있는 다른 축사까지 모두 살 처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산과정과 AI 방역과정을 보니, 3300만이란 숫자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바로 동물의 본성을 거스르며 생산성의 논리만 따지는 공장식 사육과 엄청난 양의 육류 소비가 AI 피해의 근본적인 원인인 것입니다. 바이러스의 높은 전염성이나 방역체계의 한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너무나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생산방식으로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사용하면서도 병원균에 노출되었을 때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공장식 축산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는 비단 가금류뿐 아니라 소나 돼지 등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합니다.


    사실 육류 소비는 매번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한 번 먹는 고기반찬이 요즘은 하루에도 여러 종류의 요리로 접하게 되고, 치킨이나 삼겹살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서민 외식의 대표주자입니다. 늘어난 소비에 맞춰 좁은 공간에서 최대한 빨리 농장 동물을 키워 공급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이후 AI로 인해 살 처분 된 닭과 오리가 7600만 마리가 넘고, 구제역 피해로 매몰된 소와 돼지가 380만여 마리가 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생산과 소비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매년 수백 수천 명의 공무원이 살아있는 닭과 오리를 자루에 담아 땅에 묻는 끔찍한 작업에 투입되어야 하고, 정성껏 키워온 소와 돼지를 한 순간에 잃게 된 축산업자들의 좌절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 방역과 보상 과정에 투입되는 수 조원 단위의 예산을 생각할 때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넘길 수 있을까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죽음의 문화 쇄신해야


     자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저의 고민은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무얼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당장 저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니 자신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제가 아는 분 중에도 성실하게 일하며 맛있는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는 아녜스 자매님도 떠오르고, 저녁 늦게까지 치킨 집을 운영하는 형제님도 생각이 납니다. 이러한 논의가 당장 고기는 사먹지 말고 닭과 돼지를 살리자는 단순한 도식으로 비춰질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창조 질서를 지켜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명백해 보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는 세상 모든 피조물의 창조를 전하며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라고 전해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세상의 창조 질서가 계속되기 위한 사명을 우리 인간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인간을 축복하시며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 28)하고 말씀하신 것은 자연의 정복이 아니라 창조 질서의 보존을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닭과 돼지가 그 본성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그 원인이 인간의 탐욕이라면 분명 우리는 이러한 죽음의 문화를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일부 선진국들은 1999년부터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동물보호와 복지에 대한 의정서를 합의했습니다. 성장 촉진제나 항생제 사용을 금지했고, 산란계의 케이지 사육을 제한하는 조치 등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에 있어 창조 질서 보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 69항에서 “우리는 이 땅의 재화를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하고, 또한 다른 생명체들도 하느님 보시기에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을 것을 요청받습니다.”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살 처분 당하는 수천만 닭과 돼지의 존재를 그저 숫자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돌보아야 할 피조물로 생각한다면,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시작하는 길은 분명 우리의 소중한 신앙 행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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