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스리잡…쉴틈 없던 그들에게 거리 두기는 불가능했다
물류센터로 몰려든 ‘n잡’ 노동자들 감염에 무방비 노출
‘언택트 소비’의 이면, 밀집 환경서 평일·주말 없이 고군분투
구로 확진자, 새벽 녹즙 배달…구미 20대, 슈퍼·식당 일 병행
공항·서비스직 등 종사하던 ‘코로나 실직자’들도 대거 유입
경기 부천 쿠팡 물류센터 관련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시 멈춤’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모습이 또다시 드러났다. 누군가는 밤낮으로 ‘n잡’을 뛰며 생계를 이어갔다.
늘어나는 ‘언택트(비대면)’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 누군가는 ‘거리 두기’가 어려운 물류센터로 매일같이 출근했다.
28일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한 부천 물류센터 확진자 동선을 보면, 인천에 사는 ㄱ씨는 ‘직장①’과 ‘직장②’에 출근했다. 콜센터와 물류센터 양쪽에서 ‘투잡’을 뛴 것이다. ㄱ씨는 22일 오전 9시~오후 6시 콜센터에서 일을 하고, 주말인 23일 오후 5시~다음날 새벽 3시 부천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25일 월요일에는 다시 콜센터로 출근했다. 또 다른 확진자 ㄴ씨는 지난달 8일부터 지난 22일까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이, 21~22일 한 초등학교 긴급돌봄교실 지원 인력으로 단기 시간제 일을 했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부천 물류센터 폐쇄 직전(25일 오후) 간담회 녹취록에서도 한 노동자는 ‘투잡’을 먼저 걱정한다. 회사 관계자가 폐쇄를 공지하며 “현재 따로 연락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1차적으로 접촉자가 아니다”라고 설명하자, 그는 다른 일을 하러 가도 되는지부터 묻는다. “거기까진 모른다”는 사측의 답변에 그는 “다른 일을 겸해서 하는 사람들은 당장 오늘과 내일 일을 나가도 되는 거냐”고 재차 물었다.
부천 물류센터의 최초 확진자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돌잔치에도 ‘투잡’으로 일하던 사진사가 있었다. 지난 2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그는 평일에는 택시 운전을 했다. 지난 3월 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근무하던 확진자 역시 새벽에 녹즙 배달업무를 했다. 비슷한 시기 경북 구미시의 20대 남성 확진자도 오전 11시부터 슈퍼마켓에서 배송업무를 하고,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음식점에 출근했다.
국내 1위의 온라인 쇼핑몰 쿠팡은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소비자들의 장보기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2월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할 때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배송’ 주문량이 폭증했다. 소비자와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배송 방식을 전면 비대면으로 바꿔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후 감염병 확산 예방을 위한 언택트 소비가 크게 늘었지만, 그 뒤에는 증가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더 밀집된 환경에서 고강도 접촉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물건을 쌓고, 포장하고, 옮기는 일은 서로 밀접하게 접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n잡’을 뛰지 않은 부천 물류센터 확진자들도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낮밤이 바뀐 하루를 보내곤 했다. 인천에 사는 20대 여성은 늦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50대 남성도 여느 직장인의 출근 준비 시간인 오전 8시쯤 물류센터에서 퇴근 셔틀버스를 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