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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타파][배달 죽음]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렸다 사망...18살 은범 군 이야기
    • 등록일 2019-09-2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7
  • [배달 죽음] 1-① 무면허 배달 내몰렸다 사망...18살 은범 군 이야기

    "은범아, 어디야?"


    그날, 진우(가명·당시 18살)는 은범이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족발집 사장이 “은범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간 것 같다”고 말한 뒤였다. 은범이 번호로 전화를 한 사람은 은범이가 아니라 제주대병원 응급실 관계자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은범이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장난인 줄 알았다. “나 이런 장난 싫어해. 빨리 은범이 바꿔.”


    그러자 응급실 관계자가 다급하게 다시 말했다. “정말 긴급상황입니다. 빨리 보호자를 불러주세요.”
    족발집에서 친구 진우와 함께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은범(사망·사고 당시 18살) 군은 그날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지 1시간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


    아르바이트의 시작


    은범이는 18살의 밝고 착한 학생이었다. 제주도에서 두 명의 누나와 살았고,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면 “엄마에게 가져다 드리겠다”고 말하곤 했다. 친구들과 짓궂은 장난도 치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는 평범한 친구였고, 아들이었다.


    “아르바이트생 좀 구해줘.”


    은범이가 제주도 제주시의 한 족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5일이었다. 친구인 진우가 소개한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하루 전, 족발집 사장은 이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해 온 진우에게 “아르바이트를 할 만한 친구가 없냐”고 물었다. “친구가 있기는 한데 면허가 없어서 배달 일은 못 해요.” 진우는 친구인 은범이를 떠올리며 답했다. 하지만 사장은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고 말했다. 면허가 없는데도 괜찮다니, 진우는 당연히 은범이에게는 ‘홀 서빙’ 만 시킬 줄 알았다.


    “엄마, 나 아르바이트하게 됐어. 족발집인데 홀서빙이야.”


    아르바이트 시작을 앞두고 은범이는 따로 살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물었다. “배달은 없니?” “응 없어.”

     

    ▲ 은범 군이 일했던 제주도 제주시의 족발집


    위험의 징조


    하지만 출근 첫날부터 은범이는 배달을 해야 했다. 들었던 것과 달리 족발집 일은 ‘배달 일’과 ‘홀 서빙’이 나눠져 있지 않았다. 출근 첫날, 족발집에는 은범이와 친구 진우, 그리고 잠깐 일을 도와주러 온 다른 아르바이트생 A 군이 있었다. 가게 밖에서 이 세 명이 일하는 모습을 CCTV로 한참 지켜보던 사장은 가장 오래 일을 해 온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다른 애들(은범 군과 A 군)은 서빙을 볼 줄 모르니까, 네가 가게를 보고 가까운 곳은 은범이 보고 배달 가라고 해.”


    은범이의 아슬아슬한 배달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째 날에 3번, 둘째 날 3번, 셋째 날에는 7번이나 배달을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이 된 넷째 날에도 은범이는 3번 배달을 나갔다. 은범이가 사고를 당한 뒤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 CCTV로 확인된 내용이고, 실제 배달 횟수는 더 많았다고 친구들은 증언했다.


    넷째 날 3번째 배달, 그리고 죽음


    은범이는 넷째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달을 나갔다. 배달 지시가 내려질 때마다 은범이는 헬멧을 챙겨 쓰고, 포장된 족발과 카드기를 챙겨들고 가게를 나섰다. 족발집 사장은 가게 밖에 있을 땐 스마트폰에 연결된 CCTV로 아르바이트생들의 근무태도를 체크했다. 하지만 오토바이 면허가 없는 은범이가 배달 나가는 것을 단 한 번도 말리지 않았다. 사고가 난 건 넷째 날 3번째 배달이었다.


    4월 8일 오후 6시 19분쯤, 배달을 나갔던 은범이는 급커브길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해가 지면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한 편도 1차로 도로였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던 은범이가 중심을 잃고 중앙선을 넘어 왼쪽으로 넘어졌다. 그 순간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은범이와 그대로 충돌했다.

     

    ▲ 은범 군 사망진단서


    병원으로 이송된 은범이는 응급실에서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그러나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 장 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뒤였다. 8일 오후 7시 19분. 18살 은범이에게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사인은 외상성 심정지였다.


    ‘그 날’ 진우에게 걸려온 17통의 ‘사장님 전화’


    “난 배달을 시킨 적이 없어.”


    은범이가 사고를 당한 날, 진우는 족발집 사장에게서 모두 17통의 전화를 받았다. 사장은 처음에는 “은범이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게 아니고, 가게에 놀러 왔다가 혼자 그냥 오토바이를 몰고 나간 거라고 경찰 조사에서 말하라”고 시켰다. 하지만 진우가 “제 친구인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따지자, 이번에는 “은범이는 ‘홀 알바’만 한 걸로 하자”, “나는 무면허 배달을 시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은범이가 사고를 당한 직후, 진우는 은범이에게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자신을 탓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쉬던 날 사고가 났다는 점도 괴로움을 더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은범이가 죽었다”고 울먹이던 진우에게 족발집 사장은 온통 경찰 조사와 관련된 말만 할 뿐이었다. “경찰에게 진술을 잘 해달라”는 취지였다. 또 경찰에 가서 뭐라고 진술했는지를 물어보려는 의도였다. 17통의 전화가 다 그런 내용이었다. 진우의 기억에, 족발집 사장은 은범이의 사고를 걱정하고 미안해 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진우는 족발집 사장에게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더는 전화하지 말아 주세요.”


    족발집 사장 부부는 은범이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은범이 가족에게 전화도 한 통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에 가서는 “유족에게 위로금이라도 드리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은범이가 세상을 떠난 뒤 족발집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진우는 친구들과 함께 SNS에 사장을 비판하는 글도 올렸다. 얼마 뒤 사장의 지인이라는 사람이 연락을 해 왔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도 있으니 글을 다 내리라”는 말이었다.


    은범이 사망 사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족발집 사장은 시종일관 ‘나 몰라라’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들(족발집 사장 부부)은 은범이가 배달을 나가는 걸 몰랐다는 주장이었다. 수사관은 사장에게 CCTV 화면을 보여주며 질문했다. “첫째날인 5일에는 배달을 나가야 하는 직원들이 가게에 있고 홀에 있어야 하는 은범이가 배달을 나가고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배달을 갔다 돌아온 은범이가 영수증과 카드기를 꺼내 올려두는 것과 헬멧을 쓰고 있는 것, 포장된 배달 음식을 들고나가는 것을 보고도 은범이가 배달을 하는지를 모를 수 있나” 하는 등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시종일관 “몰랐다”고, “은범이가 음식 포장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고 답했다. 사장은 “은범이는 배달을 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데, 왜 배달을 나갔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반복했다.


    벌금 30만원


    조사가 다 끝난 뒤, 족발집 사장은 은범이 사망 책임으로 고작 벌금 30만 원의 처벌을 받았다. 제주지방경찰청이 열의를 가지고 수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은범이 사고와 관련 업주인 족발집 사장에게 ‘도로교통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은 은범이에게 무면허 운전을 시켰기 때문이었고, 업무상과실치사는 그러한 업무상 과실로 인해 은범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붙은 죄목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뒤 상황이 바뀌었다. 검찰은 ‘업무상과실치사’가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족발집 사장 부부가 은범이의 무면허 운전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배달을 시킨 것까지는 인정된다”면서도, “그 같은 사실이 교통사고로 인한 은범이의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결국 도로교통법 위반죄의 최고형인 벌금 30만 원을 결정했다.


    은범이의 어머니 장수미 씨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어디 가서 땡 빚이라도 내서 로펌 변호사를 사면 어떻게 될 수도 있다 하고, 그런 말도 있더라고요.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까? 거기에 대한 마땅한 처벌을 받게 될 줄 알았죠, 당연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돈 30만 원에, 내 아들은 이 세상에 없는데… 법이 그렇대요, 법이."

    남은 자들의 고통


    아들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아들이 친구들과 바나나보트를 타면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우리 아들 이런 것도 해봤네”라고 되뇌이는 것, 그리고 “아들이 억울하지 않게 엄마가 잘할게”라고 아들의 사진을 보며 약속하는 것 정도였다. 은범이의 어머니 장수미 씨는 납골당에 안치된 은범이의 사진을 하염없이 닦고 또 닦았다. 은범이가 쓰던 학교 책상에는 친구들이 남기고 간 편지가 한가득 놓여져 있었다.


    “우리 은범이가 의리가 좋아서 친구들이 진짜 많았어요. 친구들이 엄청났어요. 그 많은 친구들이 다 지금도.. 죄책감에서 애들이 못 헤어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19살이 된 진우의 마음속에는 사회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있다. 인터뷰 도중, 진우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벌금 30만 원 나오고부터는요. 경찰이나 검사같은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왜 저기에 있지? 이런 생각도 해보고요.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 왔는데, 그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 인터뷰를 보는 사람들, 특히 그 족발집 사장이 조금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떻게, 무슨 감정으로 살았는지. 은범이 어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저희 친구들이 그 사건 이후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또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 목숨은 재판도 판단할 수 없는 거잖아요. 이런 거 다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은범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 <뉴스타파>와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가 공동으로 취재한 기사입니다

     

     

    * 출처 : 뉴스타파 2019. 9. 24

    * 해당원문 : https://newstapa.org/article/38W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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